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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Sep 01. 2022

동생의 계절 - 봄날의 팽이

강원도 철원군

30년 전 강원도 철원.  8살 꼬마 아이는 호기심이 넘쳤다. 아이를 품기에 집은 너무 좁았다. 까까머리 동생은 눈을 뜨기 무섭게 밖으로 놀러 나가 해가 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시작은 작은 다리 안쪽 아파트 주변이었고, 국민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행동반경을 넓혔다. 9살이 되던 해부 터는 작은 다리를 넘어 편도 1시간 거리까지 쏘다녔다.

동생에게 방학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일어남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뒤척임도 없이 눈을 번쩍 뜨고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내가 기억하는 계절. 그 안의 동생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남동생의 봄

© InspiredImages, 출처 Pixabay

팽이가 유행이었다. 남자아이들 주머니에 팽이 2개 정도는 필수로 들어있었다. 줄을 감아 꼬이지 않게 던지는 것이 관건이었다. 흙길에서 팽이는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겨우 찾은 시멘트 바닥도 울퉁 거리긴 매한가지였다. 아이들은 불평하는 대신 주어진 환경 안에서 필승전략을 찾으려 애썼다.
동생은 한동안 팽이에 미쳐있었다. 감을 잃지 않으려 잠자리에 누워서도 손목 스냅을 연습했다. 잠든 동생의 손목에는 늘 팽이 줄이 감겨있었다.


하늘도 노력을 가상히 여기셨는지, 동생은 수많은 시합을 거쳐 동급생을 모두 이겼다. 친구들이 시시해지자 동생은 형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형들은 관대하지 않았다. 몇몇은 상대도 해주지 않고 꿀밤을 먹였다. 그래도 동생은 끈질겼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내 친구 민규에게 도전장을 내밀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에게 3살 차이는 컸다. 그리고 민규는 4학년 중 제일가는 팽이왕이었다. 이왕이면 잘하는 사람을 이겨보고 싶었던 동생은 누나 친분을 이용했다. 며칠 동안 시달림을 당했던 민규는 내 부탁을 받고 나서야 대결을 받아들였다. 나는 멀리서 소꿉놀이를 하며 동생을 지켜보았다.
 

형은 3판을 제안한듯했다. 동생은 흥분해서 어깨까지 들썩였다. 이번 대결은 결말이 너무 뻔해 구경꾼조차 없었다. 동생에게만 진지한 대결이 시작되었다.

첫판은 당연히 민규의 승. 동생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팽이 줄이 끊어 저라 팽팽이 담겨 감았다. 운이 었는지 민규의 실수였는지 2번째 판은 동생의 것이었다. 동생은 전쟁에 승리한 장수처럼 위풍당당했다. 상대가 나였다면 이죽거리고도 남았을 텐데 형이라 그런지 애써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 우스웠다.
 

마지막 세 번째 판. 팽이 줄에서 팽이가 빠져나왔다. 먼저 돌기 시작한 동생의 팽이에 형의 팽이가 날아들어왔다. 위에서 찍어 누르자 동생 팽이는 균형을 잃고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동생은 팽이 줄로 쳐 살려내려 했다. 다급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나 상대는 팽이왕. 민규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누가 봐도 동생 팽이에 패색이 짙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의 야속한 팽이는 옆으로 누운 채 또르르 멈췄다.

© PublicDomainPictures, 출처 Pixabay

민규는 가소롭다는 듯이 동생의 머리를  치고 자리를 떴다.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동생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애꿎은 팽이가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 멀리 던져진 팽이는 고꾸라진  땅에 박혔다.


몇 분 뒤 흐렸던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렸다. 동생이 펑펑 울었던가.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집으로 뛰어가는 아이들과 다르게 동생은 한동안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나는 아파트 복도 계단에 앉아 그런 동생을 바라보았다. 매일 싸우는 동생이지만 비 맞은 모습은 애처로웠다.


비였는지 눈물이었는지 온몸이 젖은 동생은 그날 일찍 잠에 들었고, 팽이는 더 이상 상자에서 나오지 않았다.
봄부터 시작된 팽이 유행은 가을이 오기 전 끝이 났다. 비련의 주인공 같았던 동생은 다행히도 며칠 뒤 다시 쾌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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