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티카카 Mar 14. 2022

군인아파트

우리 집은 군인아파트 3 동중 제일 앞동이다. 5층짜리 단출한 아파트. 미학이라고는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는 실용적인 외관. 엘리베이터 없는 네모난 건물의 4층 오른쪽 집이 우리의 새 보금자리다. 집의 구조는 내가 살던 곳과는 묘하게 달랐다. 겨울이 길었던 강원도의 아파트는 거실에도 미닫이 문이 달려있었다. 거실과 연결된 작은 베란다를 제외하고는 창문도 작았다. 구조의 답답함은 겨울을 한해 보내며 수긍으로 돌아섰다. 진해와 여수의 동장군이 아기 고양이였다면, 철원의 동장군은 성난 성체 호랑이였다.


군인아파트는 좁았다. 신발을 벗으면 바로 화장실 문과 미닫이 거실문이 손에 잡혔다. 몇 발자국 떼지 않아도 식탁이었다. 좁은 집은 늘 깨끗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바닥과 선반은 반짝였다. 가방을 던져두고 깨끗한 안방에 누워 책을 읽었다. 창문으로 바람이 드나들면 잠이 쏟아졌다. 잠과 싸우는 동안 책 내용은 꿈과 뒤섞이곤 했다.


엄마는 천지에 널려있던 산으로 나물을 하러 가거나 아파트  배정받은 텃밭에서 지내셨다. 작은 옥수수대는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길어졌다. 초여름의 어느 . 안방 거실 창문에 매달려 “엄마!” 하고 부르면 허리만 해진 옥수수 위로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나에게 손을 크게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다시 밭으로 사라졌다. 부르면 나타나는 엄마 모습이 좋아 창문에 매달려 일하는 엄마를  번이고 불러댔다.


베란다에는 새시가 없었다. 군인아파트의 상징 같았던 초록색 방수천으로 난간 아래가 막혀있었다. 나는 이 작은 베란다를 아주 사랑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거실은 내 방이 되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두면 꽉 차던 방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장소는 베란다였다. 바닥을 박스로 채우고 돗자리를 깔았다. 화분도 몇 개 가져다 두고 방석도 두었다. TV 시청시간이 끝난 밤, 자는 것 밖에 할 일 없던 그 시간에 나는 달을 관찰했다. 시골의 달은 커다랗다. 어느 날은 방안을 빼꼼 들여다볼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가까워진 달은 커진 만큼 환하게 빛났다. 달도 나처럼 사춘기가 인가? 달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보일 것만 같았다.

선선한 어떤 날에는 책상에서 스탠드 선을 당겨와 베란다 아지트에서 책을 읽었다. 눈이 아파오면 어둠이 산을 새카맣게 삼키는 과정을 보았다. 어두워져 더욱 선명해진 산머리는 상상력을 자극했다. 고개를 넘나들 호랑이와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를 생각하느라 깜깜한 밤 나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몇 시간을 즐거웠다.



모두 잠들었을 시간. 누군가의 열심히 살아내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변해버린 내 마음처럼. 내 주변 소리도 변한다. 희미한 구급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차 소리. 익숙한 소음 속에서 개구리 소리 나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아름답지 않던 아파트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들. 그곳은 아직도 소쩍새가 울고 있을까? 그리운 밤. 떠올릴 추억 있어 배부른 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원도 산골 다람쥐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