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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May 24. 2022

13번의 계절 (1)

강원도 철원군

30년 전 강원도 철원. 아스팔트 길을 지나 차창에 돌가루가 튀는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던 차가 멈추는 곳에 군인아파트가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보이는건 산과 논이다. 날카로운 솔잎을 가진 소나무만이 이곳의 추위를 설명하는 듯하다. 고요하고 아름다웠던 곳. 그곳의 계절을 떠올려본다.




꽝꽝 얼었던 강에 빈틈이 생긴다. 깨진. 얼음 사이로 물은 졸졸 흐른다. 물은 조금씩 조금씩 눈을 녹여낸다. 조용했던 마을에 소리가 찾아온다. 찬 소나무 사이에 콧등 간지러운 바람이 한 자락 불어온다. 봄이다.

아직 쌀쌀한 철원의 봄. 엄마들은 산으로 나물 하러 가고 아이들은 햇볕 가득한 놀이터에 모여 모처럼의 바깥놀이를 즐긴다. 여자아이들은 놀이터에 둘러앉아 소꿉놀이를 한다. 부엌놀이 장난감이 없어도 상관없다. 넓적한 돌은 그릇이 되고 오목한 돌은 국그릇으로 쓰면 그만이다. 열매를 따서 반찬을 만든다. 조각난 빨간 벽돌을 갈아 고춧가루 흉내도 내본다. 뜯어온 쑥에 빨간 양념하고 돌가루 갈아 깨를 만들어 잡초 나물에 솔솔 뿌린다. 음식이 완성되면 꽃으로 그릇 한쪽을 장식하고 나뭇가지로 젓가락을 만들어 상을 차려낸다. 아빠를 맡은 아이는 큼큼 소리를 내며 밥을 먹고 아이 역할의 친구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떠든다.

소꿉놀이가 끝나면 신발로 금을 긋고 사방치기를 한다. 사방치기가 지겨워지면 술래잡기도 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비석 치기까지 하다 보면 해는 금방 떨어졌다. 놀이의 끝을 알리는 소리는 엄마다. "밥 먹어라!" 소리가 울려 퍼지면 우리는 약속한 듯 집으로 뛴다.

 집으로 가는 길. 사방치기에 유리한 작고 단단한 돌멩이는 풀 밑에 감춰둔다. 그렇게 챙겨두던 나만의 돌멩이는 다람쥐의 도토리처럼 잊히곤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을 든든하게 주었다.


                    © janfillem, 출처 Unsplash

봄이 끝나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때쯤 장마 시작되었다. 강은 몸집을 불렸다.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는 강둑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갈곳 없어진 개구리들은 도로로 몰려들었다. 개구리는 차에 치어 배를 뒤집어 죽고는 했다. 개구리 배는 빨간색이었다. 거리엔 뛰어다디는 초록색 개구리와 뒤집어 죽은 빨간 개구리들이 넘쳐났다. 나는 개구리를 밟지 않으려 애를 쓰며 걸었다. 그러다 죽은 개구리가 불쌍해 우산을 쓰고 엉엉 울었다.

장마 때만 되면 나는 등교를 망설였다. 엄마는 유난히 미적거리는  차로 데려다주었다.  안이라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개구리들은 차바퀴에 밟혀 죽었다. 나는 개구리들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고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바보 같은 개구리들은 죽어도 죽어도 도로로 뛰어들었다. 개구리 떼가 중공군 같았다. 아빠는 중공군이 뭔지나 아냐며 웃었지만  웃을  없었다. 살아있는 초록색 개구리와 배를 뒤집고 죽어있는 빨간 개구리로 도로는 마치 6월의 크리스마스 같았다.

 

장마가 지나면 더위는 시작되었다. 죽은 개구리들은 햇빛에 바삭하게 말랐다. 쭉 펴진 채로 말려진 개구리들은 길이가 상당했다. 긴 다리를 밟지 않으려 콩콩 뛰며 거리를 걸었다. 학살의 현장 같았던 장마. 나는 아직도 개구리가 싫다. 알도 올챙이도 개구리도 다 싫다.

 



© jplenio, 출처 Pixabay

철원의 여름은 청량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천장에서 내려오는 일이 드물었다.
여름방학이면 약속이나 한 듯 강가에 아이들이 모였다. 그 시절 아이들은 상상력이 넘쳤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놀이를 생각해냈다. 나뭇잎으로 배를 만들어 경주를 했다. 잠자리채로 물고기도 잡았다. 올챙이만 잡히는 고기잡이 실력이었지만 물고기를 모는 아이들과 잡는 아이들 모두 신이 났다.
아침부터 첨벙이는 아이들 주변을 소금쟁이만이 살금살금 지나다녔다.  


여름밤 하늘은 유난히 까맣다. 가까워진 하늘에 닿기라도 할 듯 개구리는 목청껏 울었다. 쉬이 잠들지 못했던 여름밤. 개구리 합창을 들으며 규칙을 찾으려 애썼다. 음이 맞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음악 같던 합창소리는 한 마리의 다른 소리로 깨졌다. 연기처럼 음들이 사라지고 혼돈이 지난다. 그리고 다시 화음이 맞는다. 새벽이 되면 개구리 소리는 매미와 만나기도 했다. 매미는 피이유피이유 소프라노였고 개구리는 구울구울 바리톤을 맡았다. 울음소리도 파도소리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장가로 듣기엔 너무 열정적이다.


 



13번의 계절 (2)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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