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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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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Oct 02. 2021

할아버지의 집

전라도

전라남도 


바다 안쪽 산아래 마을. 동성동본 한 성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 대부분이 친척집이다. 할아버지 3형제가 터를 잡으셨고 각자 아들들이 집을 늘려갔다. 우리 할아버지는 세 아들 중 막내였다. 할아버지는 키가 180이 넘는 장신이었다. 마른 몸은 다부졌고 눈에 광채가 돌았다. 위로 두 형 유학비 마련을 위해 젊은 시절 일본에서 사업을 하셨다. 실제적인 집안의 돈줄이었다. 막냇동생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서 대학까지 마치셨던 큰할아버지들은 불행히도 단명하셨다. 일본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남은 돈으로 집을 지어 8형제를 두고 형들 대신 조카들을 돌보며 평생을 사셨다.   




마을 제일 아래. 논과 맞닿은 곳에 할아버지 집이 있다. 기와지붕에 대청마루가 있는 한옥이었다. 문마다 창호지가 발려 있고 외양간 옆 작은 아궁이에는 새벽부터 쇠죽이 끓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3개의 방과 사랑방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그중 제일 안쪽(왼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 공사를 하기 전 모습을 기억한다. 부엌에는 커다란 아궁이가 있었다. 나무에 불이 붙으면 작은 구멍 밖까지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큰엄마는 등을 둥글게 말고 앉아 부채로 불을 다스렸다. 기세 좋던 불은 큰엄마 앞에서 고분고분해졌다. 부채바람 한 번에 불꽃은 타올랐다 줄었다 하며 밥도 짓고 국도 끓여냈다. 부엌과 방은 작은 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소박하게 차린 작은 소반들은 그 문을 드나들었다.   

 

부엌과 이어진 안방엔 문이 2개가 더 있었다. 앞문을 열면 마당이었고 뒷문은 장독대가 있는 뒤뜰로 이어졌다. 나는 뒷문을 열고 밖을 보는 걸 좋아했다. 문을 열고 앉아있으면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뒤뜰 뒤로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장독대는 짙은 표정으로 굳건했고 대나무는 스산하게 흔들렸다. 대나무 사이를 지나다니는 바람을 보며, 있지도 않은 전설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눈이 오면 장독대는 소복하게 눈 모자를 썼다. 아궁이 옆방이라 더 지글지글했던 아랫목에 누워 대숲을 바라보았다. 대나무 마디 사이에 쌓인 눈은 시리도록 반짝였다.

 


안방 왼쪽 벽에는 뚫린 수납공간이 있었다. 그곳엔 반짇고리도 있고 돈도 있고 사탕바구니도 있었다. 할머니는 바구니를 꺼내 사촌들 몰래 내 손에 사탕을 쥐어 주셨다. 할머니와 나와의 비밀이었다. 사탕을 주시며 “ 막둥이 딸(아빠는 8남매 중 막내다) 귀하다 귀하다.” 늘 이야기해 주셨다. 그 말이 주문처럼 아직도 나를 귀하게 따라다닌다.  


문 쪽 벽에는 긴 거울이 있었다. 할머니는 거울 앞에서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으셨다. 그리고 긴 머리를 비녀로 동그랗게 틀어 올리셨다. 가끔 내 머리도 빗어 주셨는데 빗살이 너무 좁아 아프다 소리를 질러 댔다. 할머니는 머리숱이 많기도 많다며 웃으시곤 길게 땋아 주셨다. 아들만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도 땋은 머리 한 나는 몇 번이고 봐주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나는 할머니 어릴 적 모습을 닮았다 한다. 할아버지는 내게서 할머니 모습을 보셨던 걸까.   
 

방 앞에는 좁은 대청마루가 있었다. 마루 위 처마에는 감이나 시래기가 달려있었다. 마루를 뛰어다니며 딱딱한 감이 언제 홍시가 되나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았다. 시래기가 햇살에 바삭하게 마르면 어른들 몰래 살살 부스르며 놀았다. 비가 오던 마루도 좋았다. 강아지는 비를 피해 마루 밑으로 숨곤 했다. 마루에 엎드려 나무 틈으로 강아지를 찾았다. 눈을 마주치려 애썼지만 강아지는 심드렁하게 내리는 비만 쳐다보았다. 처마에서 똑똑 떨어지는 비는 댓돌을 적시고 내 시간은 느리게 지나갔다.   

 

마루 앞에는 커다란 마당이 있다. 마당 왼편엔 앵두나무와 작은 평상이 있었다. 6월이면 큰아빠는 소쿠리 가득 앵두를 따 주셨다. 큰아빠 무릎에 누워 앵두를 먹었다. 앵두나무 잎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무늬를 만들어냈다. 손바닥을 펴 하늘에 대보면 앵두색으로 물든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평상 옆쪽으로는 빨랫줄이 늘어져 있다. 긴 장대로 빨랫줄을 들어 올려 고정시켰다. 마당에서 놀다 장대를 쓰러뜨리는 날엔 빨래들이 흙마당으로 모두 쏟아져 내렸다. 큰엄마는 사촌오빠를 혼내려 몸빼바지를 추켜올리며 뛰어다니셨고 사촌오빠는 날쌔게 대문으로 빠져나가 큰큰아빠 집으로 내달렸다.   


부엌 앞쪽에는 창고가 있었다. 깨 터는 갈퀴나 농사에 필요한 장비가 가득했다. 무서운 기계들이 많아 괴물이 사는 집이라 불렸다. 장난꾸러기 오빠들도 창고에는 얼씬하지 않았다.  


마당 오른편에는 외양간이 있었다. 갈 때마다 외양간 주인이 달라졌다. 어느 해 새끼 소가 대문으로 냅다 달려 탈출했다. 집안 어른들이 막대기 하나씩 들고 송아지를 쫓아 뛰었다. 골목은 친척들로 넘쳐났다. 30분쯤 지났을까 작은 아빠가 의기양양하게 송아지를 잡아왔다. 어미소는 큰 눈망울로 한동안 우우 울어 댔다.   

 

외양간 끝엔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빠질까 무서워 볼일을 참았다. 참다못해 다리를 꼬고 있으면 할머니는 요강을 주셨다. 고개를 저어봤지만 도리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참 뒤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바뀌었다. 왜 인지 모르겠으나 화장실 벽엔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외양간과 맞닿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소는 그 구멍에 눈을 대고 나를 지켜봤다. 눈을 바짝 대고 커다란 눈을 끔뻑끔뻑 거리면 나는 어김없이 소리를 질렀다. 내 소리를 듣고 큰엄마가 빗자루로 소를 나무라셨다. 소는 커다랗게 울고는 또 눈을 갖다 댔다.   

 외양간 옆에는 닭장과 개집도 있었다. 마당을 나다니는 닭들이 무서워 마루에 갇혀 있곤 했다. 큰아빠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안아 평상으로 옮겨 주셨다. 사촌오빠가 나무 막대기 하나 쥐어 주면 반나절 동안 닭을 쫓으며 평상을 지켰다.    

 

대문 옆에는 아빠 태어나던 해 심었다는 유자나무가 있었다. 번개에 맞고도 살아남은 그 나무를 마을 친척분들 모두가 좋아하셨다. 아빠는 시골 내려올 때마다 유자를 땄다. 차 뒤에 놓아두면 은은한 유자향이 났다. 차 안의 달큼한 향은 얼마간 내 멀미도 앗아가 주었다.  

 



이 집에서 8형제가 살았다. 8형제. 20명이 넘는 사촌. 아이들과 어른들로 북적했던 집은 이제 큰엄마뿐이다. 아궁이가 있던 부엌은 가스레인지가 있는 신식 주방으로 바뀌었다. 주방 옆으로는 변기가 있는 화장실이 생겼다. 고모들이 지냈던 방은 소쿠리 가득한 창고가 되었다. 쇠죽이 끓던 외양간 옆 작은 아궁이도 막혔다.  


변한 건 집의 형태만은 아니었다. 나를 너무 업어 허리가 굽으셨다 웃으시던 할머니도. 남동생을 보고 온 주름이 펴지도록 환히 웃으시던 할아버지도. 앵두를 따서 입에 넣어 주시던 큰아빠도 모두 돌아가셨다. 집은 여전히 반갑지만, 날 반겨주었던 이들은 이생에 없다.


30년 전 일이라 내가 기억하는 그 집이 꿈인지 실제 했는지도 막연하다. 늘 한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주던 집은 이렇게 흐릿 해져간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막둥이 손녀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 아이들은 주택에 살아 본 적이 없다. 태어나 가본 할머니 할아버지 집도 우리 집도 모두 아파트다. 아궁이는 교과서로 배운다.   
  

오직 기억만이 집을 추억한다. 잊혀 가는 아쉬움이 날 기억에 머무르게 한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잊히지 않게 글로 기록해 보려 한다. 이 글에서 모두들 평안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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