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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앙꼬 Apr 08. 2021

잣방울을 아시나요

9월 : 용인 금어리잣나무 유아숲 체험원

숲에서는 계절이 천천히 흐른다. 우리가 느낄 때의 계절은 봄가을이 짧고 여름과 겨울이 긴 것 같지만, 숲에 가보면 사계절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이 손을 잡고 유아 숲 체험원에 갔다가 땅바닥에 누가 파먹은 잣방울을 보면서 '아, 가을이구나' 했다. 숲에서는 다람쥐와 청설모가 벌써부터 겨울을 준비하는 거였다. 여전히 덥지만 시원한 바람이 분다. 여름내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자취를 감추었다. 모기 입이 돌아간다는 계절이 온 거다. 아이와 숲체험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가을이다.



용인 금어리 잣나무 유아 숲 체험원 @ 2020년 9월
용인 금어리 잣나무 유아 숲 체험원 @ 2020년 9월
용인 금어리 잣나무 유아 숲 체험원 @ 2020년 9월


용인에 있는 금어리 잣나무 유아 숲 체험원에서 잣방울을 처음 만났다. 아이야 3살 인생 처음 잣방울을 봤겠지만, 나는 삼십 대 중반인데도 잣방울은 처음이었다. 솔방울은 많이 봤지만 잣방울은 또 뭔가. 잣방울은 잣나무 열매를 말하는 거였다. 솔방울처럼 생겼지만 솔방울보다 크기가 컸고 길쭉했다. 그리고 송진 냄새가 아주 강하게 났다. 집에 가져다 놓으면 자연 그대로 숲의 향을 간직한 방향제가 될 것 같았다. 잣방울을 밤송이 까듯이 발을 양쪽으로 해서 열어봤다. 잣방울 한 개에 잣이 50개도 넘게 들어 있었다. 딱딱한 껍데기 안에 잣이 들어 있는데, 껍질을 하나하나 일일이 벗겨야 우리가 아는 노란 잣이 나온다. 아, 이래서 잣이 비쌀 수밖에 없구나. 아이 덕분에 또 하나 알아간다.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니 힐링 숲 표지판이 나왔다. 입구에서 멀지는 않았는데 경사가 심한 편이었고 아이를 동반하다 보니 아이의 속도에 맞추게 되었다. 성인의 걸음으로는 여기까지 15분 이면 올 것 같은데, 오면서 잣방울 설명도 해주고 잣도 까주고 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40분 넘게 걸렸다. 오래 걸리면 뭐 어떤가.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빨리 가면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천천히 가면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밖에 나왔을 땐 재촉하지 말고,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것, 또는 충분히 뭔가를 관찰하거나 놀 수 있는 시간을 줄 것. 


힐링 숲에서 잠시 쉬다가 산을 더 올라가면 탐험 숲 놀이마당이 나온다. 여기가 그동안 다녔던 유아 숲 체험원의 모습과 가장 비슷했다. 스파이더맨 놀이, 밧줄 놀이, 그네 등의 놀이시설이 숲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밧줄에 매달려 놀던 아이가 무슨 소리가 나서 한쪽을 응시했다. 그쪽을 보니 청설모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잣방울을 떨어뜨려놓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잣을 까는 것 같았다. 숲에서 나온 열매(밤, 도토리, 잣 등)를 채취하면 다람쥐와 청설모를 비롯한 숲 속 동물들이 굶을 수도 있다. 그러니 가을에는 숲 체험할 때 열매를 주워 모았더라도 숲 속 동물들에게 양보하는 게 좋겠다. 



용인 금어리 잣나무 유아 숲 체험원 @ 2020년 9월
용인 금어리 잣나무 유아 숲 체험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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