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斷想

예순셋, 푸르던 당신의 삶이 지다

by 김남웅


폐. 암. 말. 기

평소 좋아하던 담배까지 끊고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식어가는 몸보다 살아있는 자식 걱정에

평안한 웃음 짓던 아버지 모습은

저미는 아픔을 주었다


고통을 나눌 수 없기에

가슴이 메어오는 슬픔을 느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떠오르는 눈꺼풀을 누르고

그냥 죽은 듯 자는 것 밖에


그날 밤 침상에 기대어 울고

휴게실 벽면에 머리를 대고 울고

모두가 잠든 밤 초승달 보고 울고

벚꽃나무 꼭대기 까치소리에 또 울고

마음을 놓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며

눈물의 밤을 보냈다


예순셋의 짧은 인생길

마음은 열려있어 세상은 환한데

몸은 푸르러 세상일은 총총한데

고단한 몸 닫혀있어 암덩이를 키우고

마른기침소리에 새벽이 일렁이며

울리는 신음에 가슴이 멍든다


젊은 시절을 산과 나무를 벗삼아 살았다

집안의 몰락, 빈 손으로 떠난 길

산목련 흐드러진 *하장의 산 골짝을 걸어

철쭉 빛 가슴 시린 태백산의 준령을 지나

동해를 안고 구름을 가르며 *선자령 고개를 넘어

산이 부르고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아버지라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까만 밤 달과 별을 노래하며 살았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은

그저 배부르고 등 따뜻한 살아있는 자의 넋두리다

죽음 앞에 선 자와

병과 싸우며 신음하고 있는 자

가난하고 고달픈 자에게

인생이란 고난과 아픔의 연속이요

늘 반복되는 나와의 싸움이다

지루한 싸움에서 승리를 꿈꾸며

하루하루의 고통을 이겨 나가는 것이다


빼꼼히 열린 병실 사이로

찌푸린 얼굴로 물을 갈망하던 아버지는 없다

그토록 보고 싶던 고향집 똥개도

꼭 한번 피고 싶었던 장미 담배도

삼겹살 한 점과 동치미 한 그릇을 눈에 담고

시월의 마지막 *부드랫골 양지바른 언덕으로 떠났다


입이 마르고 숨이 막혀도 꼭 하고 싶은 말

수많은 말들 중에 자식에게 남긴 마지막 단어

"네 엄마를 부탁한다"


가을바람 낙엽을 몰아 신작로를 달리고

밤하늘 달이 지고 별이 진다

푸르던 당신의 삶도 진다



* 하장 : 강원도 삼척군 하장면

*선자령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성산면 경계에 있는 산(1,157m)

* 부드래골 :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원길리의 작은 골짜기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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