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다소 엉성했던 퇴근박의 추억
캠핑을 즐기는 각양각색의 방법들
최근에는 캠핑족들이 늘어나면서 캠핑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캠핑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용어들 또한 나날이 새롭고 풍부해지는 느낌도 든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혼자 즐기는 캠핑은 '솔캠', 남편 없이 아내와 자녀만 함께하는 캠핑을 '미즈캠'이라고 부르고, 캠핑장으로 퇴근하는 캠핑을 '퇴근박', 여행 혹은 캠핑 중 차 안에서 머무르는 걸 '차박'이라고 칭하며 사람들은 각자 캠핑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즐긴다.
브런치에 캠핑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디서 어떻게 캠핑을 할지 매번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우리는 지난해 여름 서울 근교로 '퇴근박'을 다녀오게 됐다. 무려 6개월이나 지난 그 날의 캠핑을 이제서야 기억을 더듬어 짧게나마 적어보려고 한다.
퇴근박이 아니라 야근박인 것 같기도 하고...
한 4시쯤 일찌감치 퇴근해서 러시아워를 피해 이동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퇴근박의 형태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6시 정시 퇴근 후 가깝게 갈 수 있는 거리를 고려하여, 서울과 경기도 경계쯤에 있는 캠핑장을 골랐다.
그러나 현실은 가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고(강원도 갔을 시간), 도착하니 이미 깜깜해져 있고(야근하고 집에 온 느낌도 나고), 이럴 거면 왜 서울 근교를 고집했는지 모르겠고...(눈물)
여러모로 우리가 생각했던 퇴근박 느낌은 이런 게 아니었지만, 저녁밥도 제대로 못 먹은 터라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내리고 밥을 먹었다. 캠핑장으로 오는 길에 포장해온 돈까스는 진작에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우리가 이번에 찾은 북한산 농바위 캠핑장은 북한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캠핑장인데, 늦은 밤이라 북한산은커녕 깜깜해서 랜턴을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대충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싶었지만, 꼭대기에 있는 사이트가 경치가 좋아서 인기라는 사장님 말씀에 넘어가 돌계단을 몇 차례 오르내리며 수고스럽게 짐을 날랐다.(감사하게 사장님도 함께 도와주셨다ㅠㅠ)
아침이 밝고, 닭소리인지 새소리인지 우렁차게 울어대는 주변 조류들의 모닝콜로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오니 사이트 뒤로 우뚝 솟은 북한산이 보였다. 날씨도 깨끗해서 경치는 듣던 대로 정말 좋았다!
아침을 먹고 쉬다 보니까 점점 해가 뜨거워지고 더워지기 시작했다. 캠핑장에 간단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는데, 어쩐지 그곳에서는 더위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아서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근처 대형 마트에 피신하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건, 나는 이 날 몸이 이상할 만큼 매가리 없이 너무너무 피곤했다. 커피를 수혈해봐도, 술을 마셔봐도(?) 몸이 자꾸 축 늘어지는 것이 분명 더위를 먹은 거라고 99.8% 정도 확신에 차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더위를 먹은 게 아니었....
꼬치구이와 하이볼은 사랑
마트에서의 피신을 마치고 더위가 조금 수그러들 무렵, 저녁 먹을 준비를 하러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예전에 친구에게서 집들이 선물로 받고 쓸 일이 별로 없었던 미니 화로에 꼬치구이를 해 먹기로 했다. 집에 있는 위스키와 토닉워터, 레몬도 챙겨 와서 하이볼을 만들어 야무지게 마셨다. 꼬치구이와 하이볼의 조합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다.
하루 종일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다가 이 순간만큼은 '역시 이 맛에 캠핑하지!' 하면서 행복해한다. 캠핑이라는 범주 안에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술이 차지하는 비율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집이 최고', '침대가 최고'를 연발하며 다시는 캠핑을 가지 않을 사람처럼 격하게 휴식을 취했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도 다시 느끼는 거지만, 이 날의 퇴근박은 어딘가 엉성했고 고생스러운 기억밖에 안 남은 캠핑이었다.
그건 날씨가 너무 더웠던 건지, 내 컨디션이 유난히 안 좋았던 건지, 캠핑장이 별로였던 건지 잘 모를 일이지만, 이때 우리는 '임신'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당분간 캠핑과 멀어질 것이라는 걸 꿈에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