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질은 아기의 잠이 결정한다
뭐 대단한 글을 쓸 것처럼 보이는 제목이지만, 사실 별 게 없다. 육아 9개월 차, 나는 아직도 아기의 잠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기 잘 자요?”가 일종의 안부인사 같은 것인데, 그 인사는 곧 엄마 혹은 아빠에게 “밤마다 평안하십니까?”라고 묻는 질문과도 같다.
당연한 이야기인 게, 아기가 밤에 잘 자야 엄마도 아빠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부모라면 누구나 아기의 통잠을 간절히 염원하고, 통잠을 자게 해 준다는 ‘수면교육’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기 수면교육에 관련된 서적도 다양하고, 심지어 아기의 잠을 분석하고 컨설팅해주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이는 아기의 잠은 전문적인 손길이 필요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영역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지난 9개월 간, 나의 연구대상(아기)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다음과 같았다.
1. 잠투정이 심하다.
정~말 심했다. 초저녁만 되면 숨 넘어가게 울었다. 응급실에 데려가야 되나 싶을 정도로 목청 높여 울기도 했다. 덕분에 얼굴도 잘 모르는 이웃집 주민분들께 매일같이 죄송했다...
2. 누워서 안 잔다.
거의 5개월을 안아서 재운 것 같다. 눕혀서 재우려고 하면 팔다리를 휘저어가며 극도로 거부, 짜증, 오열했다. 우리 아이는 평균 이상의 체중을 가진 건강한 아기라 내 손목과 어깨는 너덜너덜해져 갔고, 그냥 이번 생에서는 튼튼한 관절을 포기하기로 했다.
3. 엄마하고만 잔다.
아빠 하고는 죽어도 안 잔다. 엄마가 옆에 있어야 잔다. 아이는 격하게 엄마 품과 엄마 냄새를 갈구했다. 아기를 재우는 건 무조건 나의 업무였고, 때로는 그게 너무 벅찼다.
4. 자주 깬다.
아이는 50일이 지나고 통잠을 자줬다. 이런 걸 두고 100일의 기절이라고 하던가, 슬프게도 100일이 지나고부터는 자면서 수도 없이 깨어났다. 뒤집기를 시작하니 뒤집히다 깨어나고, 못 뒤집게 막아 놓으면 짜증 내면서 깨고, 앉기 시작하니까 자다가 앉기도 하고, 갑자기 으앙 하고 울며 깨기도 했고 아무튼 계속 깼다.
나의 야무진 목표는 ‘잠투정 안 하고 누워서 통잠 자기’였고, 앞서 열거한 문제점들을 해결할만한 몇 가지 시도를 해봤다.
(1) 수면 의식
맘카페, 육아서적 등에서는 공통적으로 수면 의식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낮밤의 구분을 위해 저녁이 되면 집안의 조도를 낮추고, 목욕 후 수유를 한 뒤, 몸이 이완될 수 있도록 마사지를 하고, 동화책 읽기, 자장가 불러주기 등 일련의 의식을 진행하라고 한다.
아이가 잠투정이 가장 심했던 100일 전, 수면 의식은 씨알도 안 먹혔다. 마사지를 해주려고 눕히면 짜증을 냈고, 내 노랫소리보다 울음소리가 더 커져서 자장가도 실패했으며, 동화책을 쳐다볼 여유조차 없이 울어서 수면 의식이고 뭐고 팔 빠질 때까지 안고 공갈젖꼭지를 물린 뒤, 물소리나 드라이기 소리를 브금 삼아 둥가 둥가하며 재웠다.
이후에도 나는 수면 의식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이것이 실제로 아기가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주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의식에 공을 들이지 않아서일지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너 이제 자야 돼’ 정도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정도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2) 쉬닥법
흔히 아기를 재우는 데 안눕법, 쉬닥법, 퍼버법 등 뭔가 전문적인 방법들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워낙 잠투정이 심하고 눕히자마자 울어재끼는 스타일이라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실패할 게 뻔해서 애초에 수면교육에 대한 자신도, 의지도 크게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옆으로 눕혀서 팔베개를 해주고 등을 토닥 거리며 귓가에 쉬 소리를 내니 잠드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게 된 건 이게 ‘쉬닥법(쉬 소리를 내며 토닥이는 것)’인 모양이다. 어떤 날은 먹혔고, 어떤 날은 안 먹혔지만 꽤 유의미한 방법이었다.
(3) 수면 컨설팅
아이가 무거워질수록 안아서 재우는 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아기 수면을 컨설팅해준다는 곳들을 찾아봤다.
처음엔 내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으나, 막상 돈을 내고 컨설팅을 받자니 꽤 비싼 금액이었는데, 돈을 지불한 만큼의 결과가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 망설여졌다. 그래서 일단 무료 컨설팅이라도 받아보기로 했다. (컨설팅이라기보다 아기 하루 일과를 분석받을 수 있다.)
그곳에서 이야기하는 건, 하루의 규칙적인 일과 정립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상시간, 수유 텀, 낮잠 시간, 밤잠 들기 전 깨어 있는 시간 등 매일의 일과를 되도록 동일하게 만들어주면 아기가 안정을 느끼고 잠을 잘 잔다는 것이었다.
아기의 일과를 어플로 기록하면 며칠 뒤 분석지가 날아오는 데, 분석지에 따르면 우리 아이는 비교적 규칙적인 일과가 정립되어 있고, 낮잠 시간도 밤잠 시간도 다 괜찮다고 했다. 잠들기 전 아이의 잠투정 강도와, 아이를 안아 재우며 망가진 내 관절의 정도는 표기할 수 없으니 당연히 괜찮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4) 그 외
혹시 목욕이 수면을 방해하는 건가 싶어서 오전으로 목욕시간을 바꿔보기도 했다. 낮잠을 짧게 재우면 밤잠을 길게 자지 않을까 싶어서 짧게 재워도 봤지만 오히려 더 피곤해할 뿐이었다. 이유식을 시작하면 잘 잔다는 전설같은 게 있었으나 글쎄 잘 모르겠다. 잠이 오는 신호를 빠르게 파악해보고, 자는 장소를 바꿔보거나, 애착 인형도 줘봤고, 이래 저래 자잘한 변화들을 적용해봤는데 너무 자잘해서 기억이 잘 안 난다.
여러 가지 고민과 시도를 할수록 우리 아이는 잠에 예민한 아기라는 걸 상기시킬 뿐, 뭘 해본들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지지 않음이 다행이었다.
조금 허무맹랑한 결과지만, 시간이 흐르니 잠투정은 저절로 사라졌다. 또, 시간이 흐르니 안아서 재우지 않아도 눕히면 스스로 편한 자세를 찾아 누워자거나 혹은 엎드려서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하고도 더러 잘 잔다. 왜 그렇게 아등바등했나 싶게 시간이 답이었다.
자주 깨는 현상은 여전하지만, 빈도는 예전보다 조금 줄어들었다. 어떤 날은 자주 깨고, 어떤 날은 잘 안 깨는데 그냥 복불복인 것 같다. 어른도 가끔 자다가 종종 깨어나는 밤이 있으니, 뭐 그런 셈일 수도 있겠다(?)
잠투정 없이 누워만 자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은 이앓이였다.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기도 하고, 새벽에 오열을 하기도 한다. ‘산 넘어 산’이라는 게 딱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통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아이의 낮잠 시간, 밤잠 시간, 총 수면 시간을 매일 기록하며 세 요소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려 들지만, 도통 알 수가 없다.
아기는 꾸준히 성장하고 변화한다. 키가 커지고, 이가 나고, 생각도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들쑥 날쑥한 아이의 수면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어쩌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여태 그래 왔듯, 그냥 시간이 흐르기를 존버 하는 수밖에...
말은 이렇게 해도 통잠 자게 해주는 영양제입니다~같은 소문이 들리면 홀라당 넘어가겠지.
무엇보다 육아는 요구 조건뿐 아니라 ‘결과’가 계속해서 바뀌는 지구 상에서 유일한 일이다. 현명하고 유능한 엄마 아빠는 아이의 발달에 대해 이해하고 가장 효과적인 육아 방법을 사용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언제나 순항을 하는 것은 아니다.
- 트레이시 호그, 멜린다 블라우 <베이비 위스퍼 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