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때로는 미완성의 기억이 더욱 선명하다
결혼 전 남편과 다녀왔던 캠핑을 떠올려본다. 어딘가 허술한 듯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그 날의 캠핑을 맛보기 시식이라고 비유해야 할까, 파일럿 프로그램 같은 것이라 해야 할까, 그런 느낌적인 느낌의 캠핑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미완성의 그 캠핑이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여행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완전한 순간보다 예상외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욱 선명하게 추억으로 남는 걸 보면, 캠핑도 얼마나 완벽했는지가 아니라 그 무렵에 느낀 감정과 분위기로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캠핑은 메리지블루의 특효약(?)
결혼 전 나에게도 ‘메리지블루’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29살, 만 나이 28세에 시집을 갔다. 대학 시절 1년의 자취 기간과 1년의 워킹홀리데이 기간을 빼면 나머지는 늘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 머물렀다. 그래서 나에게 결혼은 정신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주거의 독립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내 방과 침대, 그리고 부모님을 떠나 낯선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된다는 것에 문득 자신이 없어서 ‘이대로 결혼해도 괜찮을까?’ 하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수백 번 수천 번을 재생시키기도 했다.
별것 아닌 일에도 괜스레 슬퍼지고, 이유 없이 눈물 나는 게 영락없는 메리지블루였다. 그러던 날들이 이어지던 중,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과 데이트 명목 겸 기분전환 명목으로 인천 동검도에 위치한 캠핑장을 찾았다.
해가 지는 시간부터 달이 뜨는 시간까지
강화도에서 다리를 하나 건너 들어가는 동검도는 약 70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동검도 캠핑장의 매력을 두 가지 꼽자면, 하나는 색색깔로 변하는 석양을 사이트에서도 멋지게 조망할 수 있다는 것, 하나는 건너편 인천국제공항으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실시간으로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 우리는 서둘러 밥 준비를 했다. 캠핑장으로 들어오는 길에 산 새우를 구워 먹었다. 한 박스로 둘이 먹으려니 너무 많아 옆집 텐트에도 조금 나눠드렸다.
밤이 어둑해지고부터는 알코올을 홀짝거리면서 비행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저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오늘 밤 어디론가 떠나겠지’, ‘어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겠구나’ 같은 쓸데없는(?) 추측을 하며 비행기가 수시로 오르내리는 장면을 바라보던 게 왜 그리 평화로웠는지 모를 일이다.
결혼을 일생일대의 이벤트라고 했다. 20대가 끝나던 해, 흔히 누군가가 말하는 ‘아홉수’에 결혼을 한 나는 다가올 30대부터 기혼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불필요한 의미를 많이도 부여했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될 별의별 생각도 참 많이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29살이 30살 되는 게 뭐 그리 대수로웠나 싶...)
그런데, 그 와중에 캠핑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해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캠핑은 내가 나로서 온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줬다.
나의 남편은 결혼을 결심한 내 마음에 확신을 더해줬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망설이고 방황하는 순간마다 곁에서 나를 일으켜 세워 지지해준다.
감사할 일이고 감사한 사람이다. 매일 같은 시간이 되면 당연하게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한들, 가끔은 그 당연함으로 엄청난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당연한 나날들을 사랑하는 남편과 ‘캠핑’이라는 특별함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