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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Feb 28. 2020

캠핑과 임신의 이야기

새롭게 시작될 우리의 캠핑 제2막을 준비하며

두 줄이 뜨고 말았다


퇴근박 캠핑을 다녀온 후, 원인 모를 몸살 기운에 며칠을 골골거렸다. 요 몇 년 간 감기조차 잘 걸리지 않았고, 몸살이라는 단어는 언제 사용해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30대 체력은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며 잡혀 있던 술 약속 몇 개를 눈물을 머금고 취소했다.


생리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설마? 하는 마음에 다이소에서 가장 저렴한 임신 테스트기를 하나 사서 검사를 했더니 세상에, 두 줄이 나온다. 다이소 제품은 불량품이 많댔으니까 약국에서 다시 사서 해보자고 현실을 살짝 외면해봤다.(이럴 거면 처음부터 약국에서 사던가...)


또 두 줄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선명했던 그 날의 두 줄



우리 둘의 시간보다 소중한 건 없다


사실 지난해 1월, 우리 부부는 유산을 한 번 겪었다. 뜻하지 않았던 타이밍의 임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실은 생각보다 깊고 크게 박혀버렸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패배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임산부를 쳐다보는 것조차 불편해했고,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천천히 나를 다독여줬다.


과연 우리에게 '자녀'라는 존재가 필요한 건지에 대해 이야기도 거듭 나눠봤지만,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구상하는 건 잠시 미뤄두고, 당장 눈 앞에 놓인 둘만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집중하며 살아보기로 했다.


그 덕분에 힘든 시간을 겪고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한 부부로, 단단한 가족으로 엮여갔다.




무계획은 계획으로, 계획은 무계획으로


그러니까 그 일이 있고 7개월쯤 흘렀을 때, 우리는 계획에 없는 임신을 하고 말았다.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랬다...) 머지않아 백패킹에 도전해볼 예정이었고, 연말에는 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나려고 했었다. 제대로 된 자녀 계획은 없었어도 노는 계획만큼은 참 부지런하게 세워뒀다. 하지만 역시나 사는 게 계획한 대로 흘러갈 리 만무하다.


누군가는 '나중에 셋이 가면 되지'라는 말로 우리를 위로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디 쉽나. 철없는 예비 부모는 임신을 알고부터 둘만의 시간이 곧 사라진다는 사실에 조바심과 아쉬움을 먼저 느꼈다. 미안하다 아가야...


그런 아쉬움은 오래갈 여유도 없이 나는 곧 입덧 지옥에 입성했고, 캠핑은커녕 일상생활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캠핑의 빈자리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다. (브런치 방치의 원인이기도 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아쉬워서 한강 나들이도 가봤다. 물론 입덧과 함께...



둘에서 셋


어느덧 시간이 흘러 출산 예정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 말은 곧 반강제적으로 캠핑에 휴지기가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우리의 캠핑은 언제 재개될까?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의 아름다운 변화들을 캠핑 없이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허전한 건 사실이다.


처음에는 임신으로 인해 우리의 캠핑이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나의 젊은 날이 이대로 막을 내리게 된 것 같은 느낌은 알 수 없는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둘이서 즐기던 캠핑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아니면 '너네 이제 그렇게 캠핑 못 다녀' 하는 주변의 무시무시한 엄포 때문일까.


지난 8개월의 임신 기간 동안 '임신'과 '새로운 생명'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며, 하루하루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존재와도 가까워지면서 앞으로 펼쳐질 삶을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으로 채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셋이서 시작할 새로운 캠핑 제2막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보려고 한다.


남편이 텐트를 펼치고 망치질로 팩 다운을 하면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아빠를 도와주는 그림, 캠핑 의자 세 개를 나란히 피고 나와 남편의 손에는 맥주를, 아이의 손에는 요구르트를 쥐고 셋이 건배를 하는 장면, 우리 세 가족의 첫 번째 캠핑지는 어디가 좋을까? 우리는 그때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하는 상상.


그렇게 어디서 봤을법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사진 속 한 그림처럼 셋이서 방방곡곡 캠핑을 다니는 흐뭇한 상상을 한다. 그리고 오늘도 점점 커져가는 뱃속에서 부지런히 꼬물거리는 존재에게 '나중에 엄마 아빠랑 같이 캠핑 가자'고 미래를 넌지시 약속해본다.



"우리 캠핑에 새로 합류하실 예비 회원님, 건강한 모습으로 곧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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