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기명 May 20. 2023

3,500만원이 뉘 집 개 이름인가?

 “월요일까지 3,500만원이 필요해. 현금으로.” 어머니랑 통화하는 누나의 목소리였다. 어른들의 상투어 중에 이런 말이 있지 않나. ‘그게 뉘 집 개 이름이냐?’ M과 Z세대 경계를 타고 있고 국가가 인정한 요즘 젊은 친구인 내가 그런 말을 되뇌이게 된 날은 바로 월요일이 되기 2일 전이었다. 3,500만원. 사회생활 3년차뿐이고 주식은 파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나에겐 생소한 숫자의 현금이었다. 눈으로 그려지지 않는 돈의 스케일이라 그런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당황함을 애써 감추고 어머니께 말했다. “웬 3,500만원…?” 어머니 또한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진 못한 듯했다. 몇 달 후 결혼하는 누나가 혼수와 인테리어 계약을 한다고 지나가다 몇 번 말한 적이 있는데 현금으로 결제하면 더 할인 받는다나 뭐라나. “근데 왜 이틀 전에 말해요?” 투정 어린 말에 엄마는 해탈한 듯 말한다. “니 누나가 아빠 닮아서 그렇지 뭐”


 난 돈에 엄격한 편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최대한 빌려줄 수 있는 돈 50만원. 없어져도 타격감은 없으니까 이정도가 내 대출 한도이다. “너는 나한테 얼마 빌려줄 수 있어?” 누군가는 친구 사이의 의리를 돈으로 환산하고 싶어한다. 흔히 예능을 보면 미담을 펼치는 장면이 몇몇 생각나지 않나. 살짝 머쓱한 듯 투명한 눈을 껌뻑껌뻑대는 남자. 내려앉은 입가를 오밀조밀 움직이고 있는 그는 돈을 빌린 사람. 그리고 옆엔 내심 뿌듯한 듯 반대편에 앉은 관중이나 MC를 보며 무표정의 시크함을 날리고 있는 빌려준 사람. ‘군말 없이 1억을 빌려줬다’라 말하면 화면엔 놀람이 가득 담긴 자막 효과가 등장하고 이어지는 방청객과 MC의 놀랍다는 호응까지. 둘 사이 우정의 가치는 1억 이상이라는 각종 기사가 퍼진다.


 친구들끼리도 안줏거리로 이런 대화를 하곤 했다. 대게 화두는 이거다.


“이번에 또 걔한테 연락왔냐?”

“아, 너도?”

“50만원 빌려달라던데?”

“그래서 빌려줬어?”

“아니 돈 없다고 했지”


 그렇다. 뜬금없이 ‘뭐해?’ ‘잘 지내?’라고 안부 인사인 척 카톡을 보낸 후 본색을 드러낸다. 창의적이지 못한 수법을 아직까지 쓰고 있는 친구인데 대뜸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을 돌린다. 우린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짐작할 수 있기에 절대 빌려주지 않는다. “이게 바로 수요 없는 공급이지 않겠어?” “아마 고맙다고 하는 메시지도 진정성 하나도 없을 거야.” 이젠 연락이 오면 받지도 않게 된다. 내가 빌려준 돈이 공중분해 되는 걸 지켜볼 수 없기에 필사적인 변명 또는 무응답으로 대응한다. 그날 술자리의 인트로는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고. 술 한 잔씩 먹다가 친구 한 명이 적적한 분위기를 못 참고 모두에게 질문을 한다. “너네는 나 얼마까지 빌려줄 수 있냐?” 우린 즉각적으로 짠 듯이 말한다.


“안 빌려 준다”

“내가 왜 빌려주냐”

“이제 연락하지 말자”

“만나서 반가웠다.”


 4명의 즉각적이고 단호함 가득한 답변 폭격을 받은 그 친구는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하다. 내 그럴줄 알았다란 표정을 지으며 그냥 술이나 마시자 한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의 난 부모님도 인정한 짠돌이였다. 유별나게 돈을 좋아했다. 대학생 때까지도 헛된 돈은 안 쓰는 편이었다. 특히 6살 전까진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시장에 가거나 길거리를 다닐 때 떨어진 동전이 있는지 보는 게 그렇게 재밌었다. 컴컴한 시멘트에 반짝이는 게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10원, 50원, 100원을 줍고 어머니께 보여주면 한참 웃으셨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돈은 부모님을 웃게 하는 정말 쉬운 도구이자 방법이었다. 또 집에서 책을 자주 읽었는데 ‘책 속에 돈이 있다.’라고 말한 어머니의 한마디 때문이다. 당시엔 그 말에 담긴 은유적인 표현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진짜 돈이 있는 줄 알았다.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기며 그림에 돈이 있는지 글씨에 돈이 적혀있는지 샅샅이 봤다. 정말 그림책 안에 돈 모양이 있으면 한참이나 그 페이지에 머물기도 했고 이미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짜 돈이 나올 거란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마냥 읽어야 할 것만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여자친구에게 이런 썰을 풀면 유치원생 재롱 잔치를 첫 번째 열에서 보듯이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최근 그런 모습을 봤다고 한다. 길을 가면 유독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을 쳐다보고 발로 툭 차보지 않냐고 말한다. 아아 그랬지. 바닥에 버려진 것이라면 누군가 밟았거나 찢어져 있어야 하지 않나. 생명력이 가득한, 아무리 봐도 새것처럼 보이는 그 물건은 툭 건들어보고 싶다.


“아니ㅋㅋㅋ 궁금하지 않아? 안에 내용물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건 누가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걸 수 있잖아.”

“ㅋㅋㅋㅋㅋ 담배도 안 피면서 왜 담뱃갑을 툭툭 쳐봐?”

“아 그렇네;;”


 그냥 보기 좋게 호기심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어렸을 때 길거리에서 돈을 찾던 그 아인, 커서 주인 잃은 물건들에 여전히 관심을 주고 있다. 버려진 것들에게 주는 관심과 위로라고 포장하면 꽤 그럴듯하지 않겠나.


 회사생활을 시작하기 전, 텅장이 당연했던 시기엔 N분의 1을 중시했다. 기분파인 아버지와 달리 매정해 보일 정도로 각자 먹은 건 알아서. 우리 모두 알바생 신분인데, 누군가 꼭 다 살 필요는 없지 않나. 근데 한 친구가 음료수를 산다? 입꼬리가 싹 올라갔다. 각자 돈 내기 애매한 상황이면 펼쳐지는 가위바위보 또는 카드깡. 친구들 사이에서 택시 탈 때 앞자리가 돈을 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 때문에 빨리 뒷자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처절한 몸부림. 필사적으로 승리를 쟁취하고 얄밉도록 좋아한다. 부들대면서 억울함 가득 풍기고 있는 친구의 표정을 보고 괜시레 음료를 맛깔나게 마시고 왕이 행차하듯 편안한 자세로 택시를 탄다. 지금 봐도 참 꿀밤 한 번 톡 치고 싶은 찌질하고 얄미운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기분파 유전은 어쩔 수 없나보다. 내가 기분파가 되는 순간이 있는데 대학에 붙거나 회사에 붙었을 때처럼 뭔가 경사가 생겼을 땐 주변 지인들에게 거하게 쏜다. 유독 내기에서 자주 진 그 친구는 아직까지 해산물 뷔페에 갔었던 걸 회상하기도 한다.


“얘가 살 때는 확실히 사긴 해”

“근데 평상시에 사주고 좀 그래봐요. 얼마나 좋아”


 좋은 곳으로 이직하면 밥 살게라고 말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는 면접을 앞둔 그 친구에게 툭 한 마디 던진다. “아 그리고 너 취업하면 알지? 스테이크 칼질하러 가자고~”


 자본주의에 무척이나 계산적인 내가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날이 있다. 현금 3,500만원이 필요하다던 누나. 매형이 집을 구해왔으니 본인은 인테리어랑 혼수를 해야 한다고. 부모님께 예전부터 말했다던데 ‘갑자기?’란 표정을 짓고 있는 부모님의 표정에 나까지 당황스러웠다. 이틀 만에 3,500만원 현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어떡해? 현금 대신 카드로 결제할 생각이셨던 아버지는 이미 계약서 도장 찍기 전이라는 누나에게 뭐라 하지 못한 채 긴급하게 가족회의를 열었다. 누나 없는 가족회의에서 아버지는 TV에 시선을 놓지 않으며 얼마 정도 가능하냐고 물어봤고 난 토스를 열어봤다. 마침 환율이 높아 환전을 3달째 미룬 300만원과 곧 만기가 되는 스무살 적금 360만원이 있었다. 나중에 아이폰으로 바꿀 때를 대비해 매달 10만원씩 모아둔 비상금 통장의 140만원. 순식간에 여윳돈을 계산할 수 있었고 800만원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제껏 토스 송금 한도 계좌를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된다. 몇 차례 돈을 분배해 송금을 마쳤다. 야속하게도 총자산의 숫자가 파사삭 롤링 되며 내려가는 걸 보고 기분이 헛헛했지만, 왠지 모르게 어깨가 살짝 올라가는 것 같고 뿌듯함이 생기더라. “누나한테 800만원 정도야 뭐~”


 성인이 되고 나서야 살짝 친해진 남매 사이지만, 별로 교류가 없었음에도 누나의 급박한 심경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고작 돈 때문에 덜 괴로웠으면 싶었다. 잘 빌려준 거겠지란 생각을 자기합리화하듯 방안에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부엌에서 다시 통화 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내가 800만원을 빌려줬단 걸 몰랐던 것 같다. 누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한테까지 돈을 빌렸다는 게 미안했나 보다. 아니면 평상시에 기브앤테이크 마인드 좀 버리라고 잔소리하던 누나는 800만원 값어치의 고마움을 전해줘야 하는 어색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신경질을 내고 있어서 좋았다. 오그라들게 나에게 전화해서는 “고맙다. 덕분에 한시름 놨다.”라고 했으면 중간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을 테다. 본인 계약금 때문에 내게도 피해를 줬다는 걸 미안해하는 그런 모습이면 됐다. 그 마음이면 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