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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Apr 26. 2023

애착잠옷요정이 돼볼까?

 내돈내산 잠옷이 하나둘씩 늘어날 때마다 독립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옷에 관심이 하나도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정말 가끔 옷은 사도 잠옷 살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잠옷은 항상 집에 있었고 늘 입는 것만 입었다. 언제 샀는지 모를 체크무늬의 패턴. 색깔만 다른 바지를 입은 아버지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게 당연했다. 어머니는 잠옷을 살 때 여러 개 사는데 같은 패턴의 다른 색을 고르셔서 의도치 않게 가족끼리 단체로 맞춘 잠옷처럼 보인다. 2+1, 1+1 이벤트 행사가 만들어준 단결력이라 볼 수 있다.


 인생 첫 잠옷을 선물받은 적이 있다. 짱구 잠옷이 유행할 때 여자친구가 커플 잠옷을 입자며 사 왔다. 수면양말처럼 보들보들했고 겨울에 입고 나가고 싶을 정도로 따뜻했다. 이렇게 어머니가 아닌 누군가가 사준 잠옷을 입게 되었다. 평상시라면 ‘돈 주고 잠옷을 산다고?’란 반응일 테지만 짱구 잠옷은 달랐다. 이건 돈 주고 살 수밖에. 근데 편리성보다는 디자인에 포커스를 둔 탓에 얼마 입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느껴지는 불편함에 서서히 안 입게 되고 최근엔 다 헤져서 장롱에 박혀두게 되었다. 결국 원래 있던 잠옷에 다시 손이 간다.


 여행 갈 때 따로 챙기기 애매한 게 잠옷이다. 특히 짱구 잠옷은 부피가 커서 가방의 절반을 차지한다. 아무리 취침시간이 절반가량 된다고 해도 이 정도의 부피감은 합리적이지 않다. 숙소에서 놀다가 근처 편의점에 갈 수도 있고 여차하면 다음 날 집까지 입고 갈 수 있는 옷을 챙긴다. 축구 유니폼. 또 애들끼리 놀러 가면 족구나 풋살은 무조건 하니까 일당백이다. 어느 하루는 비교적 최근에 맞춘 유니폼을 잠옷으로 챙겨간 적이 있다. 그 유니폼을 맞추자고 한 친구가 그 모습을 보더니 투덜거리기도 했다. ‘아니 유니폼을 잠옷으로 입는다고?’ 아무렴 어때. 자나 깨나 축구 생각하는 게 얼마나 바람직하냐며 응수한다.


 어쩌면 잠옷은 친구들에게 줄 선물로 좋지 않을까. 유재석은 지금까지 노홍철이 준 잠옷을 입는다고 한다. 무한도전 때부터 지금까지. 애착 잠옷이 되었다던데 하나를 선물 받으면 닳을 때까지 쓰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잠옷을 선물로 준다는 건 의미 있어 보인다. 평상시 입지 않는 귀여운 캐릭터가 담긴 파자마라도 잘 때만큼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수 있으니까. 에어로빅처럼 화려한 패턴이라도 어차피 눈 감고 자지 않나. 왠지 모를 화려한 내일을 꿈꾸길 바란다. 이렇게 의미 부여를 하고 보니까 매번 고민되었던 '카카오톡 선물보내기’가 해결되는 듯하다. 난생처음 잠옷을 선물해 준 사람. 벌써 갖고 싶다 이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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