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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Apr 20. 2023

누구나 부적 하나쯤은 있잖아요

 부적을 산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늘 부적을 안고 산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각자만의 부적을 안고 산다. 다들 고민거리가 있지 않나. 고민을 해결하고 싶은 생각도 은연중에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제로인 순간은 드물기에 겪고 있거나 겪을 것 같은 문제를 마음속 부적에 빨강 글씨로 적는다. 어떤 게 문제인지 아는 것만 해도 절반은 해결된 것이라 본다. 나머지 절반은 앞으로 직면해야 할 문제. 그렇게 살아간다. 몸속이 부적으로 가득 차는 게 느껴질수록 혼란스러워진다.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이 문제와 저 문제가 배배꼬이기도 할 것이다. 숙제를 하듯 하나하나 소화시킨다. 덜어내는 부적의 수만큼 몸은 가벼워진다. 속이 편안해진다.


 부적은 편지와 같다. 지금의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미래의 나에겐 잘 될 거라는 마음을 연필심 끝에 꾹꾹 담아 적은 편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싶다. 냉장고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쿠폰 자석 대신 마음속 부적을 프린트해서 붙여놓고 싶다. 이렇게 세상에 태어날 부적은 휘황찬란하고 글자 이미지 검색 앱으로도 알기 힘든 한자는 아니었으면 한다. 주변 모두가 알아줬으면 한다. 살을 빼려면 주변 사람에게 소문을 내라는 것처럼 꼭 이루고 싶은 소망과 해결하고픈 문제라면 주변에 알려야 한다. 인생은 팀플레이 아닌가. 본인만의 인생이라도 개인플레이는 없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해결하고픈 문제를 알게 되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도 방안을 찾을 때도 있다. 누군지도 모를 초면의 무당이 아닌 나를 잘 아는 친구나 가족에게 받는 부적이 진짜다.


 부적의 기원은 원시시대부터라고 한다. 주술적인 목적인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갔다 올게’란 말이 실현될 수 있는 사냥을 기원했을 테다. 동굴 벽에 장인 정신 가득 담아 돌로 사냥감을 새기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염원의 시간. 벽에 채워지는 그림이 늘어날수록 목적은 분명해지고 사람은 견고해진다. 그림을 다 그린 후 돌을 내려놓을 땐 마치 사냥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과 배부름의 안심이 느껴질 테다. 이렇게 부적의 힘은 목표를 이뤄냈다는 느낌을 근접하게나마 체감할 수 있다. 부적이란 장치는 누군가에겐 치트키 같을 것이다. 무언가를 해낼 수 있게끔 하는 신비의 힘.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는 아이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감아 주듯, 다른 사람 부적을 마주하게 되면 고개를 끄떡인다. 먼 미래의 소망이라도 나만의 부적에 새기는 순간엔 잠깐 유토피아를 다녀오게 된다. ‘그래, 언젠간 해결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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