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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Jul 18. 2023

언젠간 지하철도 그립겠지?

 지하철에 대한 마음의 온도는 스무살 전후로 180도 달라졌다.


 학교 친구들과 놀러 가거나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 자주 이용하던 십대의 지하철. 그 당시엔 우리가 타는 칸은 늘 시끌벅적했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한 번은 출입문이 열릴 때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생각 없는) 미션까지… 지금 보면 민폐 같은 행동들은 장난이란 포장 아래 가벼운 웃음으로 무마하곤 했다. 지하철 자리에 앉는 것도, 창밖에 한강이 보이는 것도, 잡상인의 우렁찬 목소리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머리를 맞대서 게임을 하기도, 손뼉치기 같은 육탄전을 하기도 했다. 그저 지하철이란 곳은 놀러 가기 전 텐션을 예열해 두는 곳이었다. 앞으로만 쭉 가는 지하철에 올라탄 우린,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장착한 채 목적지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는 관찰자가 되었다. 자리가 옥수수처럼 군데군데 비어있지만 결코 따로 앉지 않는 녀석들을 본다. 머리를 맞대고 낄낄거리는 녀석들.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크록스와 샌들을 신고 가벼운 짐을 챙긴 크로스백을 맨 그들은 어디를 가는 걸까. 서로를 놀리는데 엄청난 집중력을 퍼붓고 있는 그들에 저절로 눈이 간다. 불멍 하듯 가만히 보게 된다. 몇 년 전엔 내가 저랬었지 그랬었지 그리움 섞인 아쉬움을 머금고 집을 간다. 침묵의 지하철이 익숙해진 지 8년째. 예민해졌다. 독서실에 있는 듯 큰 소음이나 방해되는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조차도 지하철에서의 통화를 꺼리게 된다. 잘 들리지 않는 상대의 목소리, 각종 소음으로 방해받는 내 목소리. ‘지하철이라 내리면 전화할게’로 성급히 전화를 끊는다. 다시 백색소음에 가까운 상태로 복귀한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가끔 탔었던 그때의 지하철이 그립다. 누군가는 크리에이티브를 위해선 색다른 방법으로 집을 가보라곤 한다. 지하철 대신 버스, 아님 차로 가던지. 근데 그러기엔 너무 멀다. 가까우면 버스나 자전거 심지어 걸어서라도 갈 텐데. 걸으면 반나절 이상 걸리는 곳이라 비현실적이다. 버스도 애매하다. 적어도 세 번은 갈아타야 할 테다. 차를 타볼까란 생각은 저절로 없어졌다. 예전에 회사차를 타고 출근한 적 있는데 꽉 막히는 출근길과 계속 번갈아 누르게 되는 엑셀과 브레이크로 회사에 오자마자 집 가고 싶었다. 무려 지하철 타고 퇴근하고 싶었다.  차 욕심이 저절로 사라지는 경제적인 순간이었다. 결국 답은 자취로 귀결된다. 자전거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서 산다면 지하로 내려갈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버스도 타거나 택시까지 색다른 방법으로 집에 오갈 수 있을 테다. 퇴근 후의 시간을 어찌 보낼까란 고민이 더 깊어질 거라 예상한다. 매일매일 지옥철을 버텨낸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며 후련히 누워 시원한 에어컨 바람 직방으로 맞으면서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그 순간. 언젠간 오겠지. 3년 안엔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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