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소속감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몰입하게 되는 감정
관계의 의미는 아이러니한 겉과 속을 지니고 있다. 만남 이후 본격적인 관계가 시작되었다 할 수 있고, 헤어짐 이후가 돼봐야 그 사람에 대한 진면모를 알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찰나의 순간이지만 솔직하게 드러난다. 물론 우린 매일 사람을 만나고 동시에 헤어지고 있다. 한 사람에게 어떤 감정으로 대했고 내 생활 범주 속 어느 정도까지 차지했었는지 알 수 있는 건 오직 마지막 인사 후 느끼는 감정일 테다. 시원한가 섭섭한가. 아니면 갈팡질팡한 마음 그 자체의 시원섭섭한 마음인가. 짧은 순간이라도 함께한 순간들이 파사사삭 사진첩 넘어가듯 스쳐 간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한 번쯤 이런 말을 한 적 있을 테다. 내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건 건대입구 사주타로집이 아니라 본인 아닌가.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은 혼란스러워진다. 불순물을 품고 있는 물방울이 여러 방향에서 시작해 마음이란 곳을 향해 또르르 내려온다. 한 줄로 내려오는 듯하다 여러 크기의 물방울들이 경주하듯 내 마음을 종착지로 삼아 여기저기서 흘러 들어온다. 톡토록톡. 규칙적인 듯 불규칙한 고민거리를 안겨주기에 정신없는 날들을 살아간다. 몽글몽글 고여있는 물방울의 군상에 바늘을 펜싱 삼아 찌르고 싶다. 엄마 뱃속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처럼 속 시원하게. 시간이란 처방전을 굳게 믿고 물방울 같은 고민이 기체가 되어 날아가 버리는 손쉬운 해결을 바라기도 한다. 때로는 무책임하더라도 이런 해결책을 바랄 수밖에 없는 일이 있더라.
최근 회사를 떠나는 분들께 안녕을 고하는 송별회를 했다. 코로나 시기에 입사해 제대로 된 단체회식 경험이 적다. 대표님을 포함한 단체회식은 3년 만에 처음. 오후 11시에 시작한 송별회는 새벽 1시에 끝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건배사 장면을 직접 목도하고 이마에 연태고량주 라벨을 붙이신 대표님과 상무님의 모습도 처음이었다. 살아 숨 쉬는 고량주라니! 사실 단체회식 전날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복도나 화장실에서 마주치더라도 보통처럼 인사했다. 그렇지만 현장은 달랐다. 둥글게 모여 앉아 음식을 먹던 중 옆에 앉은 기획 팀장님이 넌지시 말을 던졌다. “내일 뭐하지..?” 숙연해지는 분위기에 머쓱하신 듯 비어있는 소주잔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 후 식사를 마치고 중식당을 나왔다. 공식적인 단체회식은 끝. 한참을 앞에서 오순도순 이야기 나눴다. 대화의 마무리로 가볍게 서로를 안으며 고생많았다 소주잔을 짠하듯 주고 받았다. 이제야 실감이란 게 찾아왔다.
마지막 인사 후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정의 여파는 마주하는 사람마다 달랐다. 지금은 같은 팀이 아니지만 인턴부터 사원 초반까지 대략 1년 정도 함께한 선배와는 왠지 모를 먹먹한 마음이 들었고 회사 생활 대부분을 함께한 팀장님한텐 내숭 없는 슬픔의 잔상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별로 왕래가 없던 부서의 사람에게도 진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같은 소속감이라는 이유 하나로 시원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를 표현해 줄 단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해 봤는데… 뭔가 ‘소속감정’이란 형태로 생기지 않았을까;;) 송별회 하는 날 우린 이 소속감정에 이끌려 새벽 1시까지 회식을 즐겼다. 사람에게 받은 감정을 지우는 건 여간 쉽지 않다는 걸 이렇게 몸소 배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