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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Nov 16. 2023

카피라이터가 된 수능포기자

 수능. 사람들 두뇌로 전력을 생산해낼 수 있다면 공급 수완이 가장 좋은 날. 누군가에겐 수험생들이 후회 없이 시험을 치렀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수능이 다가올 때가 되면 회사에선 옹기종기 모여 본인의 수험생 시절을 회상하는 게릴라 모임이 잦아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있는 구성이다 보니 익숙지 않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나올법한 입시 문화에 서로 신기해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런저런 많은 변화가 있었던 걸 직접 귀로 듣게 되는 시간. 예전엔 수시 지원이 1차와 2차가 있었다든지, 여름방학 때 밤 12시까지 야자를 했었다든지, 모든 수시에 수능 최저등급이 있었다든지. 모두 각 세대를 대표하는 입시 문화의 산증인이라 그런지 일타강사처럼 역사 강의하듯 썰을 술술 풀기 시작한다.


 3년차 카피라이터인 나는 초중고 12년 동안 단 한 번도 카피라이터란 꿈을 가진 적이 없었다. 사실 그런 직업이 있는지도 대학교 2학년 무렵 알게 되었다. 생활기록부에 적어 놓은 희망 직업란을 보면 (부모님 희망사항) 치과의사부터 시작해 (멋있어 보이는) CEO, (순전히 입시용) 철학교수까지 휘황찬란하다. 직업이 선생님인 사람들로 가득한 학교에선 다른 직업이 뭐가 있는지 배우기는 쉽지 않다. 선생님들도 직접 경험해본 직업은 선생님뿐이니까. 정시에만 올인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나중에 뭘 하고 싶은지는 지금은 모르겠고 일단 공부부터 한다. 수능은 고고익선이란 신념 아래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수능을 잘 볼수록 직업 선택권이 넓어진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다수였던 건 사실이다.


 난 수능포기자다. 수시에 올인했고 내 인생에 정시란 없다고 결심했다. 수시 지원자라면 어느 대학에서 어떤 과를 가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원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솔직히 나도,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몰랐다. 알고 있는 직업의 수가 현저히 적었고 그마저도 끌리는 건 없었다. 일단 대학이라도 원하는 곳에 가자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생각이 구체화하는 기회가 생겼다. 명문대 철학과에 합격한 선배와 카페에서 간단한 Q&A 시간을 가졌었다. 왜 철학과에 갔고, 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했고, 그 선택에 만족하는지. 충분한 대답을 듣고 결심했다. ‘철학은 잘 모르겠지만 철학과에 간다면 재밌겠네.’ 일단 가고 나서 좋아하는 것을 찾는 걸로 스스로와 합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책임했지만, 스스로도 답답했을 테다. 판단유보 할 수밖에 없는 그 심정은 정말 겪어보지 않고선 공감하기 힘든 감정이란 걸 대문자 T인 내가 뼈저리게 알게 된 계기였다.


 결과는 매정했다. 여섯 대학에서 단 2곳에 1차 합격을 받았다. 상향 지원한 곳과 하향 지원한 곳.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하향 지원한 곳에서 최종합격을 받아두고 상향 지원한 곳엔 속 편히 결과를 받아들이자. 어림없었다. 아마 예비 9번이었나? 가망성 없는 번호를 받았다. 이제 나에게 남은 곳이 상향 지원한 곳이라니… 수능 이후였고 매서운 겨울방학이었다. 결과 발표날에 심적으로 부담감을 느낀 나머지 혼자 할머니집으로 도피했다. 오늘이 최종합격 발표날인 걸 할머니는 모를 테니까. 느닷없이 방문한 손자지만 반겨주셨고 내가 좋아했던 시래깃국을 끓이셨다. 결과 발표 시간이 됐지만 숟가락질은 멈추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침묵이 이어진 후 슬픈 감정이 담긴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는 말이 들렸다. 결과는 듣지 못했지만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뭐”란 말이 먼저 나왔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누나와 엄마가 함께 “축하해! 합격했어!!” 외쳤다. 그 가슴 벅찬 기분의 임팩트. 밥을 먹다 말고 일어서서 자리를 빙빙 돌고 할머니에게도 합격이란 설렘의 온도를 고스란히 안겨줬다.


 인생에 있어 이런 긴장감 넘치는 설렘을 고밀도로 느끼는 날은 몇 없을 테다. 합격이란 말을 들을 때 생기는 이 사이다 같은 감정. 복잡한 속을 뻥 뚫어주듯 시원하다. 대학 합격 발표와 마찬가지로 카피라이터가 되었을 때도 비슷한 설렘이 다가왔다. 다만 3년을 고생한 수시와는 달리 1년이라는 취업 고민의 역사는 적었지만, 경제력을 갖춘 개체가 되었다는 비장함 덕분인지 뿌듯한 정도는 비슷했다. 카피라이터란 직업을 꿈 장바구니에 넣은 순간을 돌이켜보면 내가 봐도 귀엽다. 무한도전에서 정준하님이 6점이란 점수를 낼 때 7점은 좀 많은 것 같고 5점은 적은 것 같다는 이유 마냥 글을 좋아하는데 소설처럼 긴 글은 어려울 것 같고 시는 취미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서 글과 연관되어 있지만 크리에이티브를 추구하는 직업, 딱 카피라이터가 생각났다. 곧바로 네이버 지식인에 검색했고 무려 태양신의 답변을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놓았던 아기자기한 과거가 있다. 그 후 여러 대외활동을 하면서 슬로건 작성이나 글 관련된 작업은 선뜻 나서게 되었고 공익성 및 상업성을 띤 글을 점차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광고 공모전에 나가고 동아리를 하면서 비슷한 꿈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졌다. 이 덕분에 자연스레 카피라이터란 꿈이 명확해지게 되었고 지금 카피라이터란 명함을 지니고 출근하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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