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어떻게 얻고 있냐는 말에 저명한 누군가는 이런 답을 내놓고는 한다. “평상시에 타던 대중교통 말고 다른 수단을 이용해 보기도, 평소 듣던 음악이 아닌 다른 결의 음악을 듣기도 해요.” 네이버 지도에 나오는 최단 시간과 매일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아닌 음악.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란 생각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최단 시간과 좋아하는 음악을 포기하기 위한 결심은 어려우니까. ‘굳이’를 선택함에는 나름의 결과물이 따라온다. 의식적으로 딴짓을 하기로 결심해서 그런지 뭔가 하나라도 건지지 않고서는 집에 들어서기가 꺼림칙하다. 괜히 주위를 둘러보거나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나 눈으로 검색한다. 분주한 그들의 손가락 스크롤에 눈 맞춰보며 당최 무엇을 재밌게 보고 있는지 샤르륵 지나가는 쇼츠는 내가 봤던 것인지 어떤 드라마를 보는지 쓰윽 둘러본다.
‘굳이’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어느 상황에서 저 말을 자주 쓸까? 남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비정상에 가까운 상황에서 ‘굳이’를 쓸 것 같다. 이 추운 날 따듯한 대중교통 대신 매서운 바람 맞아가며 걸어가겠다든가, 책 필사를 키보드 대신 연필로 꾸욱꾸욱 눌러 쓰겠다든가. 보통의 선택이 아닌 과감하거나 무모한 또는 이상한 선택이라 판단이 들 때 ‘굳이’란 단어가 머리를 쓰윽 내밀며 쳐다본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은 뻔한 것이 되어버리는 광고 세계니까 아이디어의 비정상적인 접근을 적극 도모해 본다. 매번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전이 시점에 다다르면 굳이데이가 연속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인류학자 빅터 터너의 ‘리미널리티(liminality)’ 개념에 따르면, “보통 전이 시점에는 평소의 상징적 질서가 전복되고 ‘정상’이 아닌 상태가 나타난다.”라고 한다. 광고업계는 전이 시점의 연속이다.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의 OT 이후 생각의 기반이 브랜드나 제품이 된다. 가령 생수 브랜드 OT를 받았다면 편의점에서 꼭 A브랜드를 고르는 이유라든지, 집에서 물을 마시는 가족들을 보고는 과연 A브랜드와 B브랜드의 물맛 차이를 알 수 있을지, 카페에서는 왜 사람들은 물 대신 커피를 마실지 등 내가 어디에 있든 생수 브랜드라는 필터가 입혀진 안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 브랜드 창시자나 마케터가 아닌 이상 누가 이런 생각을 지니고 살겠나. 즉 일상생활에서 정상이 아닌 상태가 시작된다. 카피라이터를 소재로 한 미드 <매드맨>에서도 마초적인 주인공이 여성 타겟의 인사이트를 얻고자 스타킹을 신고 화장을 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의 딸 친구에게 이 모습을 들키는데 다분히 정상인에 가까운 그 친구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남자가 여자가 되어 보기도, 여자가 아기가 되어 보기도 해야 하는 게 필요한 광고 업계. 광고 자체가 ‘굳이’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광고 컨셉 자체도 평범한 건 극히 드물다. 조용한 회사에 오케스트라 군단과 함께 등장하는 광고 모델.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는 건 이온음료 하나면 된다는 액티비티한 트렌지션. 브랜드나 제품이 가진 강점을 이렇게까지 어필해야 할지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 않으면 광고를 본 소비자에게 남는 인상이 임팩트 있기 힘들 테다. 브랜드에 대한 인상을 남기는 게 광고의 역할 중 하나니까. 이런 점에서 ‘굳이’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다. 매번 생각은 하지만 실행하지 않는 포인트의 ‘굳이모먼트’. 그걸 꼬집어서 재미나 공감대를 만드는 광고라면 가려운 등을 누가 긁어주는 듯한 해소감이 광고에서도 펼쳐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상무님이 최고의 책은 산책이라 한 말이 다 빈말은 아닌 걸 알게 된다.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굳이데이에 돌입한다면 어느 인사이트를 얻게 될 진 미지수겠지만 뭐라든 얻게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 광고인이 아니더라도 익숙함 속에 낯선 포인트를 발견하게 되는, 머리까 띵!해지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굳이데이를 한 번쯤은 해보면 뭐가 되었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