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운전해야 하는 날이 생겼다. 또 주말 출근 덕에 생긴 대체 휴가를 써야 하는 날까지. 금요일에 시원하게 대휴를 쓴다고 팀장님께 고지는 해두었고, 이번 주말만큼은 서울을 벗어나자 다짐했다. 마침 단풍이 우수수 떨어질 기미가 보였다. 단풍 구경도 하면서 서울에서는 할 수 없는 그런 놀이가 필요했다. 이럴 땐 인스타그램에 도움을 얻는다. ‘단풍 구경하러 가기 좋은 곳’ 또는 ‘지금 시기에 가볼 만한 곳’ 이런 식의 썸네일을 찾아 무한 스크롤링 시작.
그 결과 ‘뮤지엄 산’이라는 참신한 콘텐츠가 생겨버렸다. 전시회인데, 무려 건축가가 안도 타다오인 곳. 강원도 원주 쪽에 위치해있어 그리 멀지도 않다. 이리 완벽한 단풍 구경 코스가 어디 있을까. 심지어 ‘뮤지엄 산’의 컨셉이자 슬로건은 ‘Disconnect to Connect’라고 한다. 휴식을 테마로 하고 있는 이곳은 무한 휴가가 필요한 나 같은 직장인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또 단풍은 금세 지나가지 않나. 한낮 지나가는 바람에 우후죽순 떨어지는 낙엽을 보기보단 적당히 붉은 생기를 머금고 있는 살아있는 단풍을 보고 싶었으므로 고민 없이 행선지를 정할 수 있었다.
‘뮤지엄 산’에 도착했다. 명상 프로그램까지 참여할까 고민하다 ‘제임스 터렐관‘ 전시만 추가하기로. 공간은 시멘트로 둘러 싸여 있다. 좌우는 막혀있었고 미로에 온 것은 기분이 들었다. 안도 타타오는 우리에게 넓은 공간을 체험할 수 있게 설계한 듯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단절을 지향하라는 미션을 주고 있는 듯했다. 야외에도 잘 찾아보면 구경할 게 많다. 다만 호기심을 갖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가는 곳들 투성이다. ‘저 외딴 문은 뭐지?’란 생각으로 가본 곳은 텅 빈 네모난 공간이었고 하늘에 한자 열십 모양의 구멍만 뚫려 있었다. 그 구멍에 햇빛이 내리쬐면 어두컴컴한 네모난 공간은 핀라이트와 같은 빛의 조명이 더더욱 선명해 보였다. 이러한 공간은 입구 초입에 있는데 벌써부터 단절되고 싶다는 이상한 기대감을 증폭시켜준다.
그 자체로 설치 전시물 같던 건물을 감탄하며 지나가고 있을 때 우리가 추가로 신청한 ‘제임스 터렐관’ 전시 시간이 다가왔다. 사실 이분이 누군지 찾아보진 않았다. 막상 원주까지 왔는데 명상도 안 하고 건물과 단풍만 구경하긴 아까워 신청한 게 크다. 하지만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근래 인상 깊은 체험 전시로 선정해버렸다. 안내해 주시는 분은 우리를 벽면 사각지대에 나란히 앉혔다. 네모난 프레임은 벽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하늘이었고, 조명인 줄 알았던 흰색은 낭떠러지였다. 빛과 조명으로 만들어낸 착시는 내면의 무의식에 공포감을 안겨 주었고, 어쩌면 지금까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죽음이란 단절 그 자체를 조금이라도 체화하고 있다는 착시를 안겨 준 전시였다.
차를 운전할 수 있다면, 아니 강원도 원주에 갈 일이 있다면, 또는 언젠간 올 단풍을 전시회와 함께 즐기고 싶다면 이곳 ‘뮤지엄 산’을 가보는 걸 추천한다. 우리에겐 자극적인 도파민을 단절시키고 내면과의 소통을 연결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