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여름잠 01화

여행의 의미

by 무기명

여행이 수식어가 되었다. "여행 가고 싶다." 여행은 동경하는 선망의 휴식 계획이 되었으니까. "마치 일본 여행 온 듯?" 초밥이나 돈가스 맛집에서 자주 이런 리액션을 하니까. 방콕의 의미가 태국의 도시라기보다 방에 콕 박혀있다는 게 더 와닿는 시대. 갈수록 여행에 대한 갈망은 캐리어에 쌓이는 먼지처럼 두터워진다. 단어도 그림과 같이 가치가 숫자로 매겨진다면, 여행이란 단어의 가치를 환산한 숫자는 급등하지 않았을까. "코시국 끝나면 다 같이 여행이나 가자" 여행은 일상의 뻔한 루틴을 깨는 휴가이자, 주변인과 앞으로의 우정을 다짐하는 일종의 매개체란 의미가 더 짙어졌다.


2021년 12월 말, 여행이란 단어를 드디어 제대로 쓸 수 있었다. "담에 여행이나 가자"란 말이 1월부터 쌓이고 쌓여 12월까지 누적되었으니 새해가 오기 전 해소해야 하지 않겠나. 친구 2명이랑 같이 가기로 했다. 조용한 방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친구. 시끌벅적한 MT 분위기를 다시 느끼고 싶은 친구. 그렇게 우린 1시간 만에 제주도행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방을 구했다. 여행이 주는 진짜 설렘을 고스란히 느끼며 결제했다.


여행 전 날은 여행의 가치가 최고가에 다다른다. 큰 가방에 차곡차곡 옷을 넣고, 빠뜨린 게 있는지 고민하고, 비행기에서 볼 영화를 저장한다. 완벽하게 준비했다는 개운함을 안고 평소보다 일찍 이불 속에 들어간다. 설렘이란 이불을 덮고 맛있는 음식의 향과 멋있는 바다의 풍경을 교차로 상상한다. 항상 여행 가기 전 날 밤은 설렌다. 막상 여행 날에는 평상시와 똑같지만.


제주도는 추웠다. 여행의 묵은 설렘을 한껏 품고 있던 우리는 뜨거웠지만. 무섭게 휘몰아치는 제주도 바람에 설렘이란 촛불들은 꺼져가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카페투어가 되었다. 남자 3명의 카페 탐방기. 차를 타고 카페를 찾아 시그니처 메뉴를 시키고 차를 타고 음식점을 찾아 메인 메뉴를 시키고 차를 타고 편의점 찾아 술과 안주를 사고 숙소를 온다. 이놈의 여행 루틴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질 않는다. 다음 날은 숙취를 호소하는 친구들을 태우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카페를 간다. 여느 TV 프로그램 이름처럼 안 싸워서 다행일 뿐.


그래도 여행 마지막 날엔 허탈감이 가득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은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웠던 내 침대 안에서는 개운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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