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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여름잠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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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Feb 02. 2022

생일도 변하더라

 작가 한강의 《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근래 시간의 감각이 곤두섰을 때가 언제일까. 생일이었다. 평상시엔 아무렇지 않게 자정을 넘겼지만, 생일 전 날 자정이 가까워지면 숨겨왔던 날카로운 감각이 깨어난다. 날카로운 연필이 시간이 지날수록 뭉개지듯이, 날카로운 감각도 점점 무뎌진다. 아직까지는 생일의 감각이 살아있어 다행이다. 이것마저 뭉뚱그려지면 달력에 온전히 나를 위한 날이 존재하긴 할까.


 생일은 달력에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빨간 날이자 일요일이다. 빨간 날에 버금가게 달력에 본인의 생일을 커스터마이징 한다. 별 표, 빨간 동그라미, ○○탄신일. 이로써 달력엔 나를 위한 날이 기록된다. 예수님, 부처님 생신만 챙겼던 무심한 달력에 내 생일을 챙긴다. 스스로. 정성스럽게.


 생일은 친구들을 만나기 좋은 날이다. 평상시에 봤던 사람이라도, 평소 보고팠던 사람이라도. 어쩔 때는 자의에 의해서, 저쩔 때는 타의에 의해서였지만. 생일 파티 자체에 대한 레이아웃은 갈수록 변했다. 초등학교 때는 정말 말 그대로 생일 파티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처럼 주인공은 명확했다. 친구들이 줬던 문화상품권(문상) 5천 원, 쨍쨍한 비닐에 밀착되어 포장된 책, 삐뚤삐뚤한 손글씨 편지. 우린 타의에 의해 구체적으로는 부모님에게 선물 주는 방법을 배웠다.


 고등학생-대학생은 바야흐로 페이스북 전성기였다. "오늘은 ○○○님 생일입니다. 축하해주세요."라는 알림으로 친구의 생일을 알게 된다. 그 당시에 나름 설렘 포인트가 있었는데 생일 전 날 자정이 다가오면 알림을 꺼놓았다. 다음 날 일어나서 알림을 확인하기까지의 그 설렘. 앱 로고 우상단에 표시된 숫자만큼 기쁨의 수치가 비례했다. 언제는 예상치도 못한 높은 숫자(;관심)에 놀라 가족들에게 자랑까지 했었는데... 당시에 생일은 허례허식에 가까웠다.


 코로나19 이후엔 생일 선물은 기프티콘이 되었다. 기프티콘이 생일 선물의 아이콘이 되었다니. 기프티콘과 함께라면 연락의 진입장벽은 낮아진다. 축하의 도구. 나한테도 너한테도 부담스럽지 않은 소통의 창구. 5천 원 상당의 문상과 유사한 질적 가치를 지닌다. 문상이 디지털화를 거쳐 기프티콘이 되었나 보다. 반면, 기프티콘에 진심인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3만 원 상당의 전통 막걸리를 보냈다. 웬 막걸리? 아, 나 술 좋아하지? 아, 저번 생일 때 내가 3만 원 대 볼펜을 선물했었지?


 역시 선물은 영어로 Give and tak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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