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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Oct 21. 2022

사진을 찍어 기억을 먹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유행이 만들어지는 그 과정은 비슷하다. 삼인성호. ‘세 사람이 거리에 범이 나왔다는 말을 하면 거짓말도 진실로 꾸밀 수 있다’란 사자성어처럼 주변의 친구 3명 이상이 시시덕 거리며 반복하는 말들을 우린 재밌는 거라 여겼고 그것을 유행어라 불렀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가방에 치렁치렁 달고 있는 키링 또한 가방에 개성을 더할 필수품이었다. 심지어 행동까지도 닮아갔는데 일요일에 개그콘서트를 인상 깊게 봤는지 유행어를 남발하고 있는 친구를 따라 서로들 웃기고 싶다는 갈증을 채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생긴 이상한 유행이 있었는데 그건 사진기피증이었다. 부모님이 사진을 들이밀면 총구라도 들이민 듯 줄행랑을 친다. 이런 기이한 유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있었다. 같은 학교, 같은 아파트, 비슷한 키, 비슷한 환경. 학교를 나와선 줄곧 친구집이나 우리집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주말까지도 엄마들과 함께 가까운 여행도 가고 문화재 탐방도 같이 했다. 남들은 우릴 쌍둥이라 오해까지도 했었다. 그 친구는 왠지 모르겠는데 사진 찍히는 걸 싫어했다. 조용한 전시회에서도 카메라 렌즈가 본인을 향해 있으면 신경질을 내고 도망갔다. 도통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같은 피사체였던 난 머쓱해지는 상황이었다. 한 명의 이탈은 곧 균형 깨진 시소처럼 마음이 휘청거렸다. 그때부터일까. 사진 찍는 걸 기피하게 됐다. 사람 눈을 마주치는 것처럼 렌즈 보는 게 어색해졌고 언제까지 서있어야 하는지, 그만 찍으면 안 되겠냐는지 등 재촉이 잦아졌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친구들도 그랬다.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게 어느새 유행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초등학교 시절의 사진은 2가지 버전으로 구분된다. 억지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어딘가 삐딱한 모습과 놀이에 몰두한 자연스러운 모습.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유별스러운 아이들 때문에 엄마들은 자연스러운 우리를 간직할 뜻밖의 기회가 생겼다.


 습관이 무서운 거라고 어릴 때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보지 못했던 게 아직 남아있다. 뭔가 사진을 찍자고 하면 머뭇거리게 되고 어색해져 저절로 김치라는 상투적인 포즈를 취하게 된다. 그놈의 김치. 유일하게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멋진 모습을 위해 힘껏 꾸민 날이 있는데 19살 때 찍은 주민등록증에 들어갈 증명사진이었다. 이젠 그 어색함 따위는 집어던진 모습을 찍어보고 싶다는 의미로 20대를 대표할 사진을 남겨보고 싶다. 취업사진이 있긴 하지만 10대와 찍은 증명사진과 정확히 동일하기에 좀 다르게 찍어봐야지. 그래도 20대를 대변할 사진이니까 몸을 만들어볼까, 피부과를 다녀볼까, 당분간은 건강식을 먹어볼까, 화보 찍듯이 투머치하게 찍어볼까. 이렇게 고민하면서 시간 보내지 말고 조금이라도 어릴 순간인 지금 찍을까. 어차피 눈에 거슬릴만한 것들은 다 보정해 줄 테니 올해가 가기 전 사진을 남겨야겠다. 아무리 몸을 만들든, 피부에 광채가 나든지 가장 어린 순간인 지금이 가장 아름다울 순간일 테니까.


 여기저기 인생네컷 찍을 수 있는 시설이 편의점 마냥 많아졌다. 사람들은 왜 인생네컷을 좋아할까. 간편하게 고화질 카메라로 그것도 즉흥적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기도 하고 좋은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하기 때문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테다. 좋은 기억을 기록하기 싫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기억을 기록하고 싶은 건 어쩌면 본능에 가깝지 않을까. 잊는 건 두렵기도 하니까. 쉽게 잊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일단 잊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어쩌면 더 기록을 부추기지 않을까. 우린 그 불안감을 한 번쯤은 느껴봤을 테다. 불안감은 경험에서 생기기도 한다. 저장하지 못해 먼지가 되었던 PPT부터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했던 날들처럼 기억이 원인이 된 불행의 결과는 다들 있다고 본다. 잊음으로 생기는 감정은 두려움으로도 확장된다. 언젠간 우정에도 어떻게든 금이 갈 것이고 식어갈 것임을 내심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정이라는 단어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는 걸까? 앞으로 이 순간을 기억하자고. 먼 미래에 우리가 이랬었지, 이땐 친했었지라는 안줏거리라도 남기려고 그런 걸까. 사진 찍기 싫어했던 친구들이 모여 사진을 찍은 날이 언젠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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