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기명 Feb 17. 2022

아이러니컬한 다이어트

 체중계 속 흔들리는 얍삽한 숫자. 숫자의 위협적인 가치가 피부에 와닿는 순간, 우린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숫자가 떨어질수록 자존감은 커진다. 구슬땀이 옷을 적실수록 숫자의 두려움은 말라간다. 식탁의 무게가 낮아질수록 이상적인 숫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몸의 부피를 대변하는 그 숫자. 삶의 습관을 바꿀만한 위력을 가졌다.


 다이어트는 낯설게 다가온다. 예능이나 인스타그램에 보면 바디프로필을 찍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줄곧 보인다. 헬스트레이너의 혹독한 식단 관리와 운동. 힘들어하는 다이어터. 일평생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기에 나에게 다이어트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자기 관리에 무관심했던 건 아니다. 단지 살을 빼기 위해 식단 조절을 하거나 단기간 고강도 운동을 한 적이 없을 뿐. 그것보단 원체 식욕이 없고 운동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불필요한 살이 찌지 않았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진.


 술을 접하자 달라졌다. 대학생 땐 술을 물 마시듯 마셨다. 성인이 되어 만나는 새로운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영롱한 초록 물건. 친한 친구와 가족에게 표출하지 않은 속마음과 어리광 섞인 행동을 낯선이에게 터놓고 표현한다. 오히려 술은 숙취해소제다. 마음속 응어리져있는 숙취같이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술술 말하게 한다. 묵은 때 가득한 고민을 비워주는 대신 비용이 생긴다. 사람들은 그걸 술배라고 부른다. 운동으로 빼기 힘든 뱃살이 이자가 불어나듯 내 몸에 붙었다.


 살에 대한 걱정은 더 늘어갔다. 여자친구를 만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살이 찌게 시작했다. #데이트맛집, #데이트카페란 단어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즐비하게 보인다. 데이트는 맛집과 카페를 내포한다.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다. 전주에 맛집을 가고, 한옥 스타벅스를 간다. 집으로 돌아올 땐 캐리어에 담을 수 없는 살덩어리를 몸에 싣고 온다. 텅텅 비어가는 지갑 대신 통통 채워지는 지방. 결국 다이어트는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다이어트가 데이트가 되어야 지방과의 이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이어트는 잘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닐까. 겉모습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드는 다이어트든, 비대해지는 자신이 싫어 목표 체중을 위한 다이어트든. 결국 나를 위한 다이어트다. 우린 잘 먹고살기 위해 먹지 않는 다이어트를 한다.

이전 12화 사진을 찍어 기억을 먹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