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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Mar 23. 2022

한강은 그대로지만 나는 아니야

 한강에는 이십대 초중반의 봄이 담겨 있다. 나에게 '한강'은 나른함 가득 품은 봄날, 누군가와 먹고 마신다는 동사의 의미였다. 이처럼 한강이 동사가 된 순간은 스무살부터이다. 학교에서 역으로 가는 길 표지판에 '한강 가는 길'이 적혀있다. 정작 한강으로 갈 건 아니지만 대략 1시간 반 집으로 가는 대장정을 잠시나마 잊을 만큼 그 말 자체가 좋았다. 그제야 대학을 다니고 있단 기분이 들었으니까.


 아직 서먹한 동기들과 첫 땡땡이를 친 날이 있다. 공강이 있는데도 굳이 수업을 빠져보겠다는 귀여운 땡땡이. 용산에서 영화를 보고 뜬금없이 쇼핑을 한다. 그러다 누군가 한강을 가자고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과일 향 맥주와 과자를 사고 한강을 걸었다. 맥주를 삼삼오오 모아 짠하는 사진을 찍어 한강에서 한강했음을 기록했다. 목적 없는 정체불명 발걸음도 여유로움으로 포장되는 곳이 한강이었다.


 이런 한강에 목적이 명확해질 때도 있다. 사이클에 한창 빠져있었던 스물둘에 내 운동장은 한강이었다. 당현천을 따라 한양대를 지나 뚝섬 유원지까지. 페달이 발에 딱 붙는 날엔 여의도 한강이 종착지였다. 잔디 위에서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없던 여유가 슬며시 물든다. 물을 맥주처럼 마시며 욱신거리는 허벅지와 엉덩이, 굽어있던 등을 쫘악 핀다. 맥주 없는 한강은 오직 운동이 목적인 곳이었다.


 스물다섯일 땐 순수한 한강 내음만을 맡을 수 없게 되었다. 마스크로 걸러지는 한강 향기. 우리가 제대로 한강을 느낄 때는 오직 무언가 먹거나 마실 때다. 초록색을 띤 비린 공기 한 점, 탄산 가득 맥주 한 입, 뭉근함이 배어있는 라면 하나. 한강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서로의 진짜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 카페 조명이 아닌 햇빛 아래에서 마스크를 벗은 그녀의 어색한 민낯. 한강에서는 우리를 여실히 드러낼 수 있다. 불콰해진 그녀의 얼굴이 술 때문일지 햇빛 때문일지 헷갈리지만, 여전히 한강과 잘 어울렸다.


 한강을 가본 지가 언제인지... 지금은 그저 이데아 같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보는 한강은 표류하고 있는 이름 모를 새들만 눈에 들어온다. 잔잔한 물결을 방석 삼은 새처럼 자리에 앉은 채 흘러가고 있다. 지하철 통유리를 통해 보는 한강은 한강이 아니다. 두꺼운 통유리를 안경 삼아 보니까 충분히 한강의 실재를 의심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한강은 내가 즐기는 한강이어야 하니까. 1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은 '나른함 가득한 봄날, 누군가와 먹고 마신다'였는데 지금은 여유로운 순간을 연상시킬 상징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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