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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Jan 27. 2022

시작

 2021년 이후로 많은 게 변했다. '사회초년생''. '막내 카피라이터'. '광고회사 신입사원'. 거창하게 말한다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만큼 온갖 막내란 막내는 내 호칭이 되기 시작한다. 2020년 마지막 달까지만 해도 어딜 가나 형이거나 늙은이(?)였는데... '막내'라는 단어는 얇은 유리 같은 불안함을 투영한다. 막내. 뭔가 어린 사람, 완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얼렁뚱땅한 이미지가 잔상에 남지 않는가.  


 호기롭게 시작한 광고. 신선한 아이디어는 신선한 사람에게 나온다고 생각했다. 막 광고를 시작한 내가 가장 신선하지 않나. 10년 차 카피라이터가 사수이고, 20년 넘게 카피를 쓰신 팀장님이 있지만, 자신감은 넘쳤다. 오죽하면 사수가 자신감을 좀 없애야 한다고 칭찬 금지까지 내렸을까. 떳떳한 고개와 어깨는 오래가지는 않았다. 자신감 넘치는 내 모습은 '막내'라는 단어에 부딪혔다. 아직 어린 카피라이터. 완전하지 않은 크리 아이디어. 갑작스런 상황에 얼렁뚱땅한 모습.


 아이데이션 회의 이후는 다채로운 생각이 든다. '크리 안'이 많이 팔린 날은 생일이다. 붕 떠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목소리가 커진다. 다크서클도 옅어지는 듯하다. 반대로 아이디어를 팔지 못한 날... 우주복을 입지 않고 우주를 간 듯 불안정한 심장박동, 터질듯한 머리, 피도 거꾸로 솟는다. 물론 순화해서 말한 거다. 나 자신에 분할 때가 있다. 가끔 너무 깊어지는 듯하면 '막내'라는 단어가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막내인데 괜찮아" 이 단어는 자기합리화의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저런 걱정이 가득한 시점, 일본 컵스타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분하다
분하다
그렇게 느낀다는 건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니까


 화가 났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구석에 숨어있던 자신감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모두 시작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시작이다. 시작은 불안정하지만 안정을 위해 나아가는 시발점이다. 불안정한 나 자신에 화를 내자. 안정적인 나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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