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공간화

by 무기명

노래방은 어쩌면 신기한 장소다. 우리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곳. 노래방에서의 소통은 목소리로만 가능하다. 요즘 대화 방식인 엄지손가락의 대화, 카톡은 노래가 되지 못한다. 감정을 실컷 담아 성대 부근의 근육이 떨릴 만큼 목소리를 낸다. 따끔하고 목이 막히는 걸 느끼는 동시에 속 시원하다. 비록 내가 쓴 가사는 아니지만, 쫓기듯이 흘러가는 대로 읽었을 뿐이지만 가사의 화자가 된 듯, 원래부터 나를 위한 노래인 듯 툭툭 뱉게 된다.


인생에는 본인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할 때가 다분히 있다. 가령 사회초년생, 입문자와 같이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삼키고. 그렇게 응어리가 진 말들로 가득한 마음이 노래가 되는 곳이 생뚱맞게도 노래방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노래방은 움켜들은 마음을 닮았다. 부스를 보면 방음처리가 된 벽들로 둘러싸여 있고 실컷 소리 지를 수 있는 마이크와 스피커가 준비되어 있다. 소리를 마음껏 질러도 나만 들린다. 신랄한 소리를 내뱉어도 나만 들린다. 노래방은 더 이상 시설이 좋아지면 안 된다. 시설이 좋아질수록 응어리를 풀어낼 노래방에 의존하지 않을까. 누구랑 있든, 어디에 있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마음속에 꿍하고 구석에 방치하는 게 아닌. 혼자 말하고 듣는 게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방은 가야 한다. 인기차트를 보는 재미는 과장해서 말한다면 시대의 트렌드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보는 실시간 차트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실시간 차트에 상위권에 놓인 곡들만 봐도 그렇다. 아이돌 음악이 판치는데 들어본 적도 없는 곡이 다수이다. 그런데 1등이나 2등을 차지한 곡들을 보면 이게 요즘 시대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노래라고 볼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물론 취향 차이겠지만 스트리밍 플랫폼의 실시간 차트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건 확실하다.


듣기 좋은 곡과 부르고 싶은 곡은 따로 있나 보다. 둘 중에 어떤 게 더 의미가 있냐 물어본다면 후자라 답하고 싶다.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음악이면 듣고 싶다란 욕망을 뛰어넘는 음악적 존재감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실시간 차트 대신 노래방 인기차트가 플랫폼 대문을 장식하고 있으면 좋겠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부르는 노래. 부르고 싶어 하는 노래. 연습하고 싶어 하는 노래가 시대의 목소리를 담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인기차트를 내리다 보면 오래된 노래지만 항상 상주하고 있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 제목의 또 다른 이름은 명곡이다. 명곡은 자주 되뇌고 부르고 싶고 잘 부르고 싶어 하게끔 하는 매력이 있다.


낙성대에 자주 가는 코인노래방이 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카드로도 결제가 되는 이로운 곳이다. 몇몇 사람들이 무슨 노래 부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자기주장이 강한 멜로디가 있는 곳이다. 익숙한데 신선한 노래가 들렸다. 한 번쯤 불러보기도 했고 어릴 때 장작불 쬐면서 가사를 곱씹으며 들었던 노래,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20대의 한 남자가 목소리에 주름을 잔뜩 넣고 간드러지게 부르고 있었다. 이 노래 뭔가 동요처럼 순수한 느낌을 담아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었나라는 이색적인 충격에 빠졌다. “저렇게도 부를 수 있어?” 여자친구와 동시에 얼굴도 모를 가창자의 실력에 놀랐다. 다음날 인스타그램을 보다 이무진 신곡이 나온다는 게시물을 봤다. “개똥벌레”를 부르고 있는 영상이었는데 그 순간 ‘설마.. 이무진이 낙성대 코노를…?’ 당연히 아니겠지만 덕분에 좋은 엔딩곡 하나를 얻게 되었다.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를 해주렴~” 이 노래엔 노래방 기계의 애환이 담겨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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