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포옹

by 무기명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 무형의 말이든 유형의 사람이든 또는 옷이든. 위로가 되는 말을 생각하는 건 어렵다. 누군가는 진짜 위로는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한다. 사실 무슨 말이 격려가 되겠는가. 마음이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보이는 포옹이 그래서 더 따뜻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말보다는 볼 수 있고 또 느껴지는 포옹은 직설적인 따뜻함이다. 추울수록 붙어있게 되고, 바람이 불수록 움츠러드는 건 본성이다. 우린 이렇게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작은 아씨들>을 아직 못 봤지만 이런 대사를 우연히 접했다. “가난은 겨울옷으로 티가 나요” 슬프지만 맞는 말이다. 충동적으로 옷을 사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매달 최대 20만 원씩만 옷을 구매하고 있다. 봄과 여름은 두 세벌은 거뜬하게 살 수 있어 자주 쇼핑하게 되는데 가을을 넘어가는 순간 하나만 사도 한도에 가까워진 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20만 원으로 원하는 코트와 겨울옷은 절대 살 수가 없다. 겨울옷들은 우릴 따뜻하게 해준다는 포옹력의 기능이 더해져 높은 가치를 갖게 되나 보다. 자본주의의 포옹력은 표면적으론 따뜻해주게 하긴 하지만 우리의 주머니 속만큼은 차가워지고 냉담해진다.


한도를 어기고 한눈에 반한 코트를 샀다. 최근에 SYSTEM이란 브랜드에 빠졌는데 대체적으로 블랙 계열의 의류들이 가득한 곳이다. 멀리서 보면 다 검은색 옷들뿐이지만 하나하나 만져보고 쓱 톺아보면 과하지 않은 유니크함과 창조성이 겸비된 옷들이 보인다. 보이는 것만 그렇지 않다. 입어보는 순간 매료된다. 팔을 넣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는 어깨와 겨드랑이. 어깨선을 부드럽게 감싸는 안정감. 자세히 보면 보이는 단추의 위치와 주름 그리고 주머니. 어쩌면 한 번도 손을 거치질 않을 디테일들이지만 만약 그 주름선이 없었다면, 단추 2개만 들어갈 것 같은 그 주머니가 없었다면 아마 그 옷은 평범해질 것이다. 이렇게 작지만 강한 디테일은 입어볼 때 존재의 이유가 설명된다.


이제 추워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기다린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벌써 11월 말인데 점심에 니트 하나만 입고 돌아다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따듯하다. 수능 날만큼은 추웠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며 살짝 기대했지만 봄이 온 것처럼 나른했다. 심지어 요즘 패딩이나 겨울옷 매출이 낮아졌다고 한다. 반대로 선글라스와 수영복의 수요가 많아졌다는데 역시 겨울이란 단어만 봐도 춥고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막상 겨울이 오면 가을을 그리워할 것이지만 첫눈에 반한 그 코트를 입고 싶어서라도 이번만큼은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포옹해 주는 그 순간을 기다려 본다.


겨울이 기다려지는 또 다른 날이 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가본 줄 알았던 여자친구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 친구들과는 매년 겨울이 되면 수차례 갔었던 곳. 스키장. 스키를 탈 줄 모르는 그녀이기에 같이 갈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다. 그녀가 LA에 있을 때 스키장에서 영상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한국 오면 스키장 같이 가자는 말에 ‘아 우리가 스키장을 안 갔었구나?’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 난생처음으로 스키장을 가는 날이라니. 목표는 크리스마스 때 스키장 가는 건데 과연 눈치싸움에서 전국민을 이길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집에 방치하고 있는 두툼한 비니가 있는데 슬슬 포장지도 뜯고 제대로 즐길 준비를 해야겠다. 스키장에 울리는 캐롤. 산타 복장을 입은 사람들. 흰 눈 위의 썰매. 김을 내뿜고 있는 어묵탕과 떡볶이. 상상되는 날이라 더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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