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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Apr 25. 2019

달콤 쌉싸름

니들이 인생의 쓴맛을 알아


늦은 오후, 먼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어진다. 저녁상을 물리고 밖을 내다보니  빗줄기가 더 세어져 있다. 어머님은 밭일이 고단하셨던지, 상을 물리고 이른 초저녁부터 자리에 누우신다. 퇴근후 식사를 마친 남편도,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았다. 둘째는 불러도 기척이 없어 방문을 열어보니, 입가에 침까지 흘리며 맛있게 잠을 잔다. 세째와 네째는 종알종알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역할놀이에 푹 빠져있는중.

"우리 귀염둥이들, 좀따 엄마 아빠랑 마트가서 장보고, 학교가서 큰언니 데리고 올께. 맛있는거 사 올테니까 잘 놀고 있어~."

"응~엄마.^^"

7살 막내는 엄마를 찾지 않을 만큼 많이 자랐고,세째는 언니엄마라 불릴만큼 막내한테 제일 인기가 좋다.


한테 막내를 부탁하고, 남편과 마트로 향했다. 장을 보고도 약간 여유가 생겨  단골카페에 들러, 따뜻한 자몽차와 청포도케잌 한조각을 시켰다.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쳐다보다, 케잌을 먹을때만 잠시 고개를 든다. 둘이 있을때, 폰만 쳐다보는걸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이날은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짜증이 늘어가는 남편...동굴속에 있는듯한 그를 괜히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 남자는 아무래도 갱년기 인가보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걸 지켜봤다. 가끔씩 버스가 지나다니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카페안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간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일까.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일까. 무척 걸음걸이가 바빠 보인다. 어릴땐 사람들이 쳐다보는게 신경쓰여 창을 등지거나 구석진 자리에 앉곤 했는데, 이젠 창을 마주 보거나 창밖이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게 되었다. 그 누구도 나를 뭐라하지 않고,관심도 없고 신경쓰지 않는다는걸 알았다. 우서로에게 한순간 스치는 사람일 뿐인데, 어릴땐 타인의 시선이 왜 그렇게 신경이 쓰였었는지. 


사장님이 예쁜 접시에 차와 케잌을 담아 주셨다. 다홍빛깔의 자몽차, 하얀 생크림에 청포도가 알알이 박힌 한조각 케잌앞에선 어떤 마음이든 무장해제가 될 것 같았다. 내 마음이 그랬다. 연분홍빛깔 도자기컵이 차와 잘 어울린다.차를 한모금씩 마실때마다  자몽조각이 빙그르르 돈다. 자몽알갱이들도 제법 보인다. 비가 내려서 몸이 자꾸 웅크려졌는데 이럴땐 따스한 차한잔이 딱인듯 싶다. 시판 자몽차라면 단맛이 강할텐데, 여긴 사장님이 직접 담그셔서 단맛도 적당하고, 자몽 자체의 맛은 살아있어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케잌도 전혀 달지 않아 남편이 맛있다며 잘 먹는다.


수제자몽차알기전, 자몽을 처음 맛보았을땐 쓴 맛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우리 형님이 자몽을 좋아하셔서 자몽차로 즐기실때 옆에서 한모금씩 거든게 다였다. 우연히 수제 자몽차를 만나면서 달콤.쌉싸름한 그 맛에 반해 버렸다.  쓴맛도 약간의 단맛을 만나니 맛있는 맛이 되었다.


니가 인생의 쓴맛을 알아!

누구말인지 몰라도, 참 맘에 든다. 인생을 쓴맛, 단맛, 짠맛에 비유하니 이보다 더 울릴 수가 없다. 살아보니,어떤 인생이든 자기의 져야할 짐이 있는 법이더라. 언덕을 오르다 가끔씩 쉬어 갈때,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실바람같은 순간들이 있어 또 한걸음 내딛을수 있는 힘을 얻지 않은가.인생이 쓰다면 쓰지만, 가끔 케잌 한조각과 같은 달콤한 순간들이 있어 그런대로 행복한,괜찮은 인생이라 말하는가 보다.  오늘 하루는 달콤 쌉싸름한 맛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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