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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May 17. 2019

바람의 길

반짝반짝 빛나기 위해


젊은날엔 젊음을 모르고


적어도 내가 경험한 사람의 마음은 유리잔처럼 깨어지기 쉽고, 갈대처럼 연약하며 때론 어리석었다. 빼앗기고 잃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며, 깨닫는다 해도 곧 잊어버려서 요요처럼 예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의 20년전 일기장에 적혀있던 고민이 아직 현재진행형인걸 보면 사람의 타고난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나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은 세공하기전의 원석에 가깝지만, 운좋게 실력있는 세공업자를 만나면 기질속에 갇혀있던 원석이 깍이고 다듬어져 모든 사람이 지니고 싶은 보석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빛나기 위해 깍여야 하나보다. 대부분 사람들은 깍이려 하지 않는다. 깍인다는건 아픔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물질,건강, 자녀등 인생 막대기로 사람을 연단하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하라는 이유를 조금은 알것 같다.


큰 바위가 오랜세월 풍파에 쓸리고 깍이며 돌덩이가 되고 돌멩이가 되고, 돌멩이는 서로 부딪히며 매끈하고 동글동글한 조약돌이 된다. 메마른 광야에서 들꽃같은 인생을 살다보면 비바람 속에서도 꽃 피우는 법을 알게 된다. 20대는 불타는 사막을 맨발로 걷는듯 했다.30대는 며느리,아내, 엄마로서의 삶에 집중하며 나의 이름을 잊고 살았다. 인생을 논하려면 마흔고개는 넘어야 하나보다 했다. 마흔이 되던해, 갑상선암에 걸려 요란한 신고식을 치뤘고 선물같은 늦둥이 둘을 낳고 키우며 깨알 기쁨을 맛보다보니 오십이 목전이다.  이제서야 뭣이 중한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난 점점 매끈매끈하고 동글동글 해진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어간다.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겨울,허리 디스크가 파열되어 두달을 누워만 있었고 한달간은 밤에 진통제도 듣지않는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못자니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거나, 아이들과 산책을 가거나, 밤이면 편안히 누워 숙면을 위하는것등 가장 기적인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어긋난건 나의 일상만이 아니었다.


팔순의 시어머님은 거동이 불편한 며느리대신 아이들을 챙기고, 청소와 식사준비를 하는등 살림을 도맡으셔야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동안, 남편은 거의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 하듯 했다. 피곤하니 궂이 오지 마라 했는데 책임감인지 정때문인지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간호사들과 같은 병실환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병원에 오면 휴게실에서 한두시간 폰만 만지작 거리다 갔기에, 별 도움이 되진 못했지만 본인은 아를 지극정성 생각하는 남편으로 인정받고 싶어했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가던날,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엄마나무가 흔들리니 가지들도 덩달아 흔들렸다.

힘든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이 엄마의 빈자리를 느껴보고, 남편이 아내의 소중함을 알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불행이라 여길수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돈 걱정않고 누워있어 감사했고, 남편이 자신의 자리를 든든히 지켜줘 감사했고, 무엇보다 건강하신 어머님이 어린 아이들을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람의 길


나는 언제나 흐르고 있는 시간이
별 쓸모없는 일들로 얌전히 채워지는 나날이 좋았다. 그런 일들이 행위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우리를 차지해 버린다.  나는 잠을 많이 잤다.
많은 것을 잊었다.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보냈다.-장 도르메송-
(언젠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떠나리)



요즘 나의 일상은 아무런 반전없는 심심한 드라마나, 무인도의 단조로운 하루를 닮아 있다. 이 심심하고 평범한 일상이 갓 구운 고소한 빵처럼 언제든 맛볼수 있는건 아니기에 주어진 순간순간 집중하며 누리려 애쓰고 있다. 아이 넷을 낳은 고통에 버금가는 아픔을 견디었지만 헛되진 않았다. 지금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속 깊은 감사에 비하면 아주 값싼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푸른 하늘을 향해 크게 숨을 내쉬어 본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지 않는다면 바람의 길을 어찌 알수 있을까. ..때로 삶이 우리를 흔드는 까닭에 우리는 인생의 길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별을 스치는 작은 바람 한점도 놓치지 않았던 시인 윤동주.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도록 스스로를 돌아보았던 시인의 마음이 별을 스치는 바람처럼 내 마음을 스친다




일상....그 빛나는 조각들


10살된 세째 딸아이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의 블로그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내 글을 가장 열심히 읽어주는 팬이다. 저녁상을 물린 뒤였다. 책상에서 먼가 한참을 긁적이던 아이의 솔직한 말에 흠칫했다.


"마 난 매일이 똑같은줄 알았는데, 일기를 쓰다보니 하나도 똑같지 않아 신기했어. "


아픈이후로 블로그에 틈틈이 쓰던 일상을 노트로 옮겨갔다. 처음엔 감사노트로 시작했지만, 적다보니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노트에 적으면 생각이 지나가기전 바로 남길수 있어 좋았다. 하루를 마치기전 묵상과 한주를 마감하며 나를 돌아보기에 일상기록만한게 없는듯 하다.  일기는 주요사건을 위주로 하지만, 일상기록은 흐르는 생각과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는데 의미가 있다.


점심으로 찹쌀수제비를 먹었다.  적당히 쫀득거리는 수제비가 넘 맛나서 두그릇을 먹었다
자동차검사 비용이 50만원이 넘게 나와서 생활비가 빵구가 났다
외출할때 양산을 놓고 와서 얼굴이 따끔거리도록 햇볕을 받았다.
엄마가 물김치를 한 통 담아주셔서 한동안 잊어버리고 잘 먹을수 있겠다.
엄마의 물김치는 넘사벽이다.
장날, 오이랑 호박이랑 싸게 구입해, 오이무침과 호박전으로 저녁식탁이 풍성할수 있었다.


시시콜콜 기록하는게 귀찮을수 있어도,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난 무엇에 자주 흔들리는지 알수 있다

안다는게 삶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오진 않지만, 기록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어제보다 더 빛나는 오늘을 만들거라 기대해 본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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