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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Jun 06. 2020

여름날 입맛없을때 이것!

여름밥상의 효자

올 여름, 만만치 않은 더위가 찾아올 거라더니  6월초인데 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랐다. 4명의 아이들과 점심때 뭘 먹을까 하다 어머님은 비빔밥을 드리고 우린 손쉬운 비빔면을 끓였다. 시중에 파는 비빔면이라도, 집에 있는 재료와 곁들이니 서글픈 정도는 아니다. 마당에 늘 있는 상추잎 서너장을 손으로 뜯어 넣고,반숙으로 삶은 계란과  김가루를 고명으로 뿌려내면 심심하지 않은 풍미가 있다.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 한끼를 간단히 때우는 일품요리가 더 자주 밥상에 오를듯하다.더위가 기승을 부릴때는  것저것 반찬을 즐기면서 식사를 할만큼 입맛이 따라주않는다. 얌전히 있어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한여름, 불과 씨름하듯 식사를 준비하는 수고를 매끼 기대  수도 없다. 주말에 장을 좀 바둬야 다.




까만 봉다리가 식탁 귀퉁이에 놓여있다. 부피가 꽤  있어보인다. 어머님이 또 나물을 캐다 놓으셨나 싶어 힐끔 들추어 보았더니 상추였다. 초여름 볕에 그을렀는지 선명한 청록색이다.


"봉다리에 상추 있는거 봤나, 순희가 주더라"


우리 밭에도 있고,마당에도 있는데 식구가 많다고 주는걸 또 받아오셨나 보다. 이맘때,  우리집 김치 냉장고는 풀밭이 된다. 미나리,우엉잎,상추,부추,쑥갓등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밭으로 출근하시는 어머님덕에 냉장고가 빌 겨를이 없다. 적당히 먹을 만큼 냉장고에 있으면 되는 며느리와 우리밭에 있는것뿐 아니라 이웃것까지 몽땅 받아오셔서 냉장고를 꽉꽉 채우셔야 맘이 편한 시어머님. 보관을 아무리 잘 한다해도 시간이 지나면 초록이들은 냉장고에서 시들고 무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도 좀 넣어 둬야 하는데 어머님께 몇 번 이야기해도 그때 뿐이다. 


사실 상추만큼 전업주부인 내게 쉽고 만만한 아이가 없다. 마당에 있는 빨간 고무다라이 화분에 깨알같은 씨앗을 무심히 뿌려두어도 별 탈없이 쑥쑥 잘 자란다. 키우는것뿐 아니라 조리도 쉽다. 다른 나물은 일일이 다듬고 데치고 쪄야 하지만, 상추는 흐르는 물에 서너번 씻는게 전부니 일이라 할것도 없다. 곁들여 먹을 쌈장이나 양념장만 넉넉히 만들어 두면 한여름 밥상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특히 입맛 없을때, 상추를 숭덩숭덩 썰어 양념장 한숟갈에 김가루 솔솔 뿌려서 쓱쓱 비비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숟가락 들기도 전에 몇 번이나 침이 꼴깍 넘어간다.


신문지에 상추를 몇 장씩 포개어 돌돌 말아 팩에 넣으면 2주정도 무르지 않고 보관이 가능하다. 종이에 말았 상추를 금방 꺼내놓으면 이거 먹을수 있을까 싶게 풀이 죽어 있지만, 물에 반나절 정도 담궈 놓았다 채에 받치면 마법처럼 주름이 펴지며 스르르 살아난다. 아이들이 신기해할 정도다.


너무 흔해 귀한줄 모르고 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보관도 단순하게 어머니 하시던대로 까만 봉지에 둘둘 말아놓으니, 봉지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수가 없어 어머님 몰래 버린적도 솔직히 많다. 까만 봉다리속처럼 알수없는 시어머님 마음.  모르신건지 알고도 모른채 하신건지 어머님께 그 일로 잔소리를 들은적은 없으나, 며느리 맘이 편하진 않았다. 이제 요령이 생긴 며느리는 보관도 신경 쓰고, 냉장고가 넘친싶으면 엄마들에게 단톡을 보내 소소한 나눔을 가지곤 한다.


"어머님, 상추넣고 비빌까요?"


"그래 그라자. 여름엔 최고지 별 다른반찬 찾을거 있나."


상추 비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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