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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Apr 11. 2019

사춘기 아이와 갱년기엄마

너의 마음이 보고 싶어


이 녀석,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 오지 않고.... 괘씸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메시지로 넘어갑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뚜-----뚜----아이가 화를 . "응, 엄마...  왜?" '왜' 니  어이가 없다. 엄마가 왜 전화했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내가 화난 것도 충분히 알고 있을 법한데 능청스럽게 왜라니, 왜라는 말이 이렇게 얄미운 말이었나. 하지만,  얄미운 상황에 나는 아이를 더 이상 다그칠 수 . 15, 아이는 대한민국의 중2, 맨몸으로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를 헤엄치, 위태위태 아이의 일상 고스란히 엄마의  일상이 되었다.


"어디야?" 


걱정되는 말투가 니다. 올라오는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고, 뱉어내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키고 건져 올린 말이다.

엄마 왜라는 말만큼이나, 아이의 입장에선 건조한 말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 못했다. 가령.... 


-늦었네. 배고플 텐데 무슨 일 ?

-오늘 저녁 네가 좋아하는 장조림 했는데, 우리 딸 언제 와? 


이런 다정함도, 친절함도 찾아볼 수 없는 나의 건조한 한마디, 아이의 한마디와  닮아있음을 깨닫지 했다. 


"열심히 가는 중, 마을에 거의  왔어"


엄마의 마음을 알지도, 알려고도 않는 아이의 대답 무심한 듯 해맑기까지 하다.  귀가시간 지키기 무척 힘들어하는 둘째 녀석은, 친구들 어울리기를 좋아 흘이 멀다 하고 는다.  30분에서 많게는 한두 시간을 초과하는 게, 점점 수가 늘어간다. 이는 시간이 갈수록 대범해졌다. 매번 훈육과 양육, 당근과 채찍의 사이에서 오락가, 갈팡질팡,  가운데서  마음  추스리기 엄청난 내공 필요했다.  마음 일어나는 소용돌이를  감당치 못하 엄마에게 아이의 마음이 보였을 리 없다. 



난 아이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겐 엄마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했다.


친구들과 노는 게 얼마나 좋았으면...


 한 번도,

늦게 귀가하는 아이의 마음 들여다보려 한 적이 없었던 나였다. 

도무 보이지 않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그러기 위해선 한없이 높아져 있는 나의 눈높이를 낮춰야 했다.  아이처 10 되어,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멀어져 가는    거리를 다시 좁힌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 수용, 이해....

이런 종류의 감정들은 책에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자라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체화되어야,  성인이 되었을 때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배여 져 나오는 것이다.

 부모님 세대 양육방식을 통해 우리 마음에 새겨진 건,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강압과 권위에 대한 무조건식 복종이었다. 부모님 권위, 선생님의 권위 앞에, 내방식 내 생각을 자유 주장하고 표현하는 것에 우리 또래 익숙지 않다. 

공감과 용이 아닌 강압과 복종 우리 안에 학습되어 있다. 


 배우지 못한걸,  아이들에게 실천하려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하지만 희망은 있다. 

스스로의 문제 보지 못하던 나는 이제 문제 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아이처럼 날마다 자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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