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들로 붐비는 금요일 저녁의 지하철 안. 운 좋게 자리에 앉게 된 나이 지긋한 여인이 지퍼식 핸디 성경을 펴든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내 대각선 앞쪽의 50대 후반 남자에게로 이동한다. 일수가방을 손에 든 그는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의 머리를 짓누른다. 여자가 자신은 임신했다고 밝히지만 남자는 노인을 앞에 두고 거짓말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도움의 눈빛을 보내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바로 그때 앞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서면서 남자의 어깨를 끌어다 말린다. 남자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고 객실은 일상을 되찾는다. 성경을 읽던 부인은 다시 시선을 떨어뜨린다. 얼마 후 남자가 내리려고 문쪽으로 움직이자, 여인도 성경을 덮고 일어선다. 남자는 출입문을 넘어서다가 갑자기 쓰러진다. 그의 가죽 재킷에는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칼자국이 길게 그어져 있었고, 얼굴에 박혀 있던 동공은 깊은 어둠으로만 조밀하게 차 있었다.
구병모 작가의 ‘파과’는 60대 여성 살인청부업자 이야기다. 하는 일과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 나이와 여자라는 설정이 스토리의 긴장감과 청량감을 증폭시킨다. 지하철에 오르면 흔히 볼 수 있는 인자한 인상의 노부인 품 속에 용도와 상황별로 쓰이는 나이프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조각’은 직업적 숙명 때문에 되도록 정붙일 만한 대상을 만들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그녀에게 수 십 년 만에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서 평온했던 황혼의 날들이 출렁이기 시작한다.
소설을 통해서 굳이 무언가 배울 점을 찾는다거나, 작가가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를 짐작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이 대단해서 책을 덮고 나니 재미있는 영화를 한편 본 듯한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적지 않은 연령의 여성이라 액션이 둔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레전드 킬러 ‘존윅’보다 몇 배 멋진 움직임을 보여준다. 더 놀라운 것은 오직 글자만으로 독자의 눈앞에 현란한 활극을 재현해 낸다는 점이다.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다가 각막에 들러붙는 표현이나 아귀가 딱 들어맞는 정교한 논리를 만나면 밑줄을 친다. 그리고 연필을 들고 필사를 하거나, 최소한 키보드로 한 번씩 따라서 써 보려고 한다. 그 문장과 전개가 손끝에 고여있다가, 내 글을 쓸 때 단 한 방울이라도 흘러나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따로 밑줄을 그을 필요가 없었다. 작품 전체의 묘사와 서사와 뛰어나서 기회가 되면 책을 통째로 한번 베껴 써보고 싶을 정도였다.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흔히 20대를 꼽는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도 여전히 소망하는 것이 있고 울고 웃고 분노한다. 평생 외로운 삶을 살았던 조각도 자신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 준 이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한다. 수없이 많은 인물들을 처리한 차가운 피가 흐르는 킬러였지만, 그의 앞에서는 자신의 늦은 나이를 애써 숨기고 싶어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할머니일 뿐이지만 그녀의 절정기는 바로 지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