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떡밥의 완벽한 회수

히가시노 게이고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을 읽고.

by 고블린 연구소

어느 날 나는 오래전에 헤어졌던 연인 사야카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통화 내용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찾을 수 있는 곳에 같이 가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이였을 적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작은 지도와 열쇠를 남겼는데, 그곳에 가면 무언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둘이 찾아간 집은 인적이 드문 곳에 지어진 오래된 2층 집이었다. 여러 해 동안 사람이 안 살았는지 외관은 낡았고 분위기는 음산했다. 열쇠를 열고 들어간 집은 덧창을 모두 닫아서 어두웠고, 긴 시간 동안 손길이 닿지 않아서 먼지가 자욱했다. 둘은 집 안의 물건들을 살펴보면서 노부부와 어린 아들, 세 명이 생활했던 곳으로 짐작한다. 이상한 점은 물건은 모두 20년 전 것인데, 집안의 모습은 어제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남아있다는 것이다. 부부 침실에는 양복이 걸려있고 한 켠에는 법전이 놓여있다. 아들 방 피아노 위엔 바이엘 악보가 펼쳐져 있고, 책과 일기장도 볼 수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쓴 일기장과 늙은 아버지가 남긴 편지들을 읽으면서 둘은 이 집에 불행한 일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사야카는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 여기에 왔었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때 그녀는 피아노 밑에 숨어서 피아노 다리에 의지해서 무서운 일들을 목격했던 걸 떠올린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히가시노의 많은 작품이 그렇듯이 이 책 역시 엄청나게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 읽는데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번역자는 후기에서 이 소설을 히가시노의 ‘걸작’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나 역시 그 표현이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한정된 인물과 공간, 시간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연과 감정들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인물은 주인공인 나와 사야카뿐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도 버려진 외딴 집으로 국한되고, 그 둘이 머무는 시간 역시 이틀 정도다. 적은 수의 등장인물, 좁은 무대, 짧은 시간이라는 점이 소설의 밀도를 높여준다. 그래서 단 한 장면도 긴장감이 늦춰지지 않고 단숨에 결말까지 읽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집이라는 배경이 얼마나 두렵게 다가올 수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옛날에 일가족 모두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집에서 맞이하는 밤은 충분히 으스스했다. 촛불에 의지해서 들어간 부모들 방에는 잘 손질된 양복이 걸려 있고, 아들 피아노 위에 놓인 프랑스 인형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인간의 공포는 피가 튀기는 살육의 현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는 걸 절감했다. 버려진 2층 집에서 밤을 지내게 된 두 주인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족의 유체가 집 어딘가에서 놓여있는 건 아닌지, 유일한 출구인 지하실로 통하는 뒷문이 벌써 잠겨있는 건 아닌지 읽는 동안 계속 등 뒤가 서늘했다.


또한 대중소설로 흡입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정폭력이라는 사회문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강압적인 자세는 집 안에서의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 외부로부터 차단된 환경에서 자행되는 폭행이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인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이런 경험이 아이 인생에 어떻게 상처로 남고, 결국은 가족 모두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로 치닿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꼽는 이 소설 최대 매력 포인트는 바로 ‘옛날에 내가 죽은 집’이라는 제목이다. 합리적인 논리로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이 어구를 어떻게 내용 속에서 설명해 줄지 책장을 넘기면서 계속 궁금했다. 표지에 공개되어 있는 이 거대한 떡밥을 소설 후반부에 펼쳐지는 놀라운 전개로 완벽하게 회수하면서 책을 든 손이 떨리도록 만들었다. 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견고한 반전이었다. 작가가 가장 큰 복선을 전면에 내세운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압축된 분량에 밀도 있는 재미와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모두 담겨있는 작품이었다. 걸작이라고 불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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