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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Jan 16. 2022

우리는 아직 우리 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빌 브라이슨의 ‘바디-우리 몸 안내서’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에서 드러난 데로 인체 여러 부분의 움직임과 하는 일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피부부터 시작해서, 뇌와 머리, 목, 심장, 허파, 소화기관, 생식기관, 뼈대 등 일반적인 장기 구분으로 분류해서 기본적인 설명을 풀어나간다. 여기에 몸에서 일어나는 각종 화학작용, 운동, 면역, 잠, 통증, 질병 등의 이야기로 살을 붙여 풍성한 지식을 제공한다. 수의학과가 다닐 때 과목으로 보면 생리학에 가장 가까울 듯하다. 당시에 그리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롭거나 이제야 이해해서 고개를 끄덕인 것도 많았다.


저자는 우선 우리 신체의 탁월함에 대해서 언급한다. 인간은 인공위성까지 쏘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아직도 조물주가 창조한 장기臟器를 완벽히 대체할 인공물을 만들지 못한다. 예를 들어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연골은 마찰계수가 얼음의 5분의 1에 불과한데, 내구성도 견고해서 거의 평생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밑창이 닳아서 금방 버리는 신발이 많은 걸 생각하면 얼마나 대단한 물질인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우리의 뇌는 하루에 대략 400칼로리 정도를 소비하는데 이는 머핀 한 개 정도의 열량이다. 머핀 한 개의 에너지로 고성능 노트북을 하루 종일 돌릴 수 있는 기술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다.


이처럼 놀라운 몸을 선물받았으면서도 사람들은 이를 아무렇게나 사용해서 질병에 시달린다. 빌 브라이슨은 책 곳곳에서 이런 문제점을 영미권 특유의 냉소적인 문장으로 꼬집는다.

*많이 먹고, 운동을 적게 하는 생활습관을 이용한 자살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19페이지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발전이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1900년보다 지금이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70퍼센트 더 높다는 것이다. 한 세기 전에는 커다란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면서 텔레비전 앞에서 대여섯 시간씩 보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174페이지

이 부분을 읽고 있을 때 내 손에는 달콤한 카페라떼가 들려 있었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2+1으로 세 개를 샀는데, 그중 벌써 세 번째였다. 항생제와 백신의 보급으로 이제 인류는 감염보다는 당뇨병이나 심장정지 같은 생활습관에서 기인한 질병으로 더 많이 죽는다는 것을 책에서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의학 발전에 중요한 대목을 차지했던 장면들도 구경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의사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던 심장관상동맥 우회 수술 초창기 이야기도 있고, 여러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도전했던 장기이식 수술과 면역억제 물질 발견 과정을 흥미롭게 조명했다. 너무나 유명한 일화인 플레밍의 페니실린 추출, 밴팅의 인슐린 발견 등에 대한 내용도 접할 수 있다. 알렉산더 플레밍과 프레데릭 밴팅은 모두 노벨상을 수상한다.


또한 현대 의학이 지금처럼 발전하기까지 인류가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시행착오에 대해서도 폭로한다. 예컨대,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질병을 다스리기 위해서 정맥에서 피를 빼는 사혈법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목이 붓고 호흡이 불편해서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혈액 40퍼센트를 빼야 했던 환자는 어느 감옥의 죄수가 아니라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었다. 이 밖에도 과거에 무분별하게 행해졌던, 이마엽 절제술이나 난소절제술 등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얼마나 어이없는 헛발질이었는지 고발한다. 이를 토대로 현재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는 치료법에도 얼마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인 감염병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몸과 질병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껴지는 정서와 비슷했다. 인류는 화성까지 탐사선을 보내고 바다 깊숙이 묻혀있는 자원까지 연구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자체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생명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고,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현대 의학도 항상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런 내용을 결코 어렵지 않게, 미국인 특유의 유머 코드를 버무려서 지루하지 않게 서술했다. 꼭 관련 분야 종사자 아니어도 한 번쯤 읽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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