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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Oct 14. 2022

'천 개의 파랑'을 읽고.

공존의 이유

퇴역한 경주마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경마산업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숙제다. 이번에 읽은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그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현역시절 경주 성적이 좋았던 말들은 씨수말이나 씨암말로 선택되서 번식마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승마용 말로 전환되어 남은 여생을 보내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말들은 일부일 뿐이고, 나머지 말들은 (이 소설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지구에서의 자리가 애매해진다. 이 질문은 소설을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나 역시 말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같이 짊어지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2035년 인간의 모습과 비슷한 모양의 로봇인 휴머노이드가 사회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편의점이나 은행과 같은 일상 공간은 물론이고, 인명구조 현장등 극한 환경에까지 휴머노이드가 배치된다. 그 와중에 말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수까지 휴머노이드로 대체되는데, 그 중 한 명이 콜리이다. 콜리는 투데이라는 경주마를 타게 된다. 투데이는 한 때 잘나가는 경주마였지만, 계속된 출전으로 다리 관절이 심하게 손상되서 경주를 치르기 힘든 상태였다. 콜리는 투데이가 달릴 때 가장 행복해한다는 것과, 달리면 달릴수록 자신의 무게를 힘겨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콜리는 휴머노이드 기수의 판단 알고리즘에는 없는 스스로 낙마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사고로 크게 부서진 콜리는 폐기 처분을 받고, 투데이 역시 더는 경주에 뛸 수 없음을 진단받고 안락사가 결정된다. 이 둘의 지구에서의 자리가 애매해질 때쯤, 이들의 생명을 연장해 주고자 도와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경마장 앞의 조그만 식당에는 세 모녀가 살고 있다. 세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있다. 엄마 보경은 소방관인 배우자가 일찍 순직하면서 어린 두 딸을 홀로 키우며 고단한 삶을 산다. 첫째 딸인 은혜는 로봇 기술이 들어간 수술을 하면 일반인처럼 걸을 수 있지만, 감당하기 힘든 수술비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둘째 연재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몸이 불편한 언니를 묵묵히 돌봐주면서 자신의 힘든 점은 내색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다리가 불편한 은혜는 투데이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투데이를 도울 방법을 찾는다. 로봇을 고치고 설계하는데 재능이 있던 연재는 마방에 방치되어 있던 콜리를 자신의 힘으로 고쳐야겠다고 맘먹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병든 경주마를 치료해 주면서 자신들이 지닌 아픔도 같이 위로받는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지치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서 위안을 얻는다. 동물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정서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말산업 업계의 시각으로 보자면, 경주마 퇴역 후 활용방안이나 경주마 복지에 대한 충분한 대책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점점 말산업에 대한 사회적 제재는 심해지고 경마팬들의 외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동물뿐만 아니라, 콜리와 같은 휴머노이드와의 공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단지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이 아닐 뿐, 여러 가지 형태의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기만 할 것이라는 성급한 두려움에 손사래를 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우리 생활의 동반자로 맞이 할 지를 궁리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로봇기술은 앞으로 더욱 폭넓게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픈 경주마를 치료해 주고, 망가진 휴머노이드 기수의 자리를 찾아주는 일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 해야 되는 일이다.
 
* 마지막으로 뜬금 없기는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의 엄마 보경과 아빠 소방관의 첫 만남 부분을 덧붙인다.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몇 번을 다시 읽었다. 자극적인 영상이 흘러넘치는 시대에 건조한 글 몇 줄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보경의 오른쪽 얼굴에는 수술로도 완벽히 지울 수 없는 화상이 남았고 드라마 시리즈 계약은 파기되었다. 인생이 왜 이렇게 곤두박질쳤는가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았다. 퇴원을 하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끊어놓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보경이 그 소방관을 만난 날은 병원에 입원한지 일주일이 됐을 때였다. 보경이 먼저 찾지는 않았다.
소방관이 찾아왔을 때 보경은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아 돌려보내고 싶었으나 차마 생명의 은인을 매몰차게 외면할 수가 없었다. 보경은 거울로 잔머리를 정리하고 색 없는 립밤을 발라 소방관을 맞이했는데,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꾸벅 인사하고 들어오는 소방관을 보고 ‘젠장...’하고 후회했다. 삶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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