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블린 연구소 Oct 04. 2022

우리가 존경해야 할 사람들.

'죽은자가 말할 때'를 읽고.

법의학이란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반인들도 법의학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대충이나마 그려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 CSI 과학수사대 류의 범죄 수사 드라마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현직 법의학자가 쓴 ‘죽은 자가 말할 때’(클라아스 부쉬만 저. 박은결 옮김)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일상을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뭔가 하이테크 한 느낌의 기계로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시료를 분석하는 모습은 별로 없었다. 그보다는 깨끗하게 닦인 스테인리스 부검대 위에 놓인 사체를 조심스럽게 메스로 갈라가면서 작업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져본 것을 서류에 글자로 옮기면서 죽은 이와 대화하고 있었다. 정직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부검실은 차분하고 적막했지만 부검대 위에 사체들은 긴박하고 참혹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과 발에 남은 다양한 방어흔은 피해자가 죽기 직전까지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흔적을 보여준다. 집단 구타를 당한 사람은 늑골과 척추가 완전 골절돼서 가슴을 누르니 바로 바닥이 느껴지기도 한다.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엄청난 양의 술을 들이붙고는 자신의 구토물에 기도가 막혀서 질식사하기도 한다. 칼에 가슴을 찔려 흉강의 음압이 유지되지 못해 폐가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교살 당해서 뇌가 심장보다 먼저 죽어가는 과정을 설명해 준다.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취하는 도피 행동은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치명상을 입고도 살인마에게서 도망치다가 집 밖 화단에서 숨을 거두거나, 화마를 피해 장롱안이나 침대 밑에 있다가 시체로 발견되기도 한다. 부검의는 몸에 남겨진 흔적들을 쫓아가면서 그가 호흡을 멈출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가늠한다. 살해된 딸을 둔 아버지는 부검의에게 묻는다. “빠른 죽음이었을까요?”라고. 두려웠던 시간이 길지 않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전해져서 글쓴이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또한 저자는 자살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여러 번 경고하고 있었다. 오늘날 사람이 외력에 의해 사망할 때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자살이라고 알려준다. 전쟁이나 교통사고 혹은 살인이 아니다. 그러면서 독일의 자살률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 주위에는 아직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이 잘 실감 나지 않는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정신과 치료나 재활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자살은 본인과 남겨진 사람들 모두에게 감당하기 힘든 비극을 남기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에 대해서도 여러 번 반성했다. 나도 가끔씩 부검을 하게 된다. 수의사 초년생 일 때는 아는 것도 없고, 그래서 겁도 없었다. 오로지 교과서에서 배운 데로 폐사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검을 하게 되면 더 긴장하고 조심스러워진다. 얼마 전까지 온기가 돌았던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책임이 많이 따르는 행동인지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숨을 거둔 후에도 또 다른 고통을 주게 되었다. 절대 그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나의 마음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한다.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본문에 “신문으로만 전해 듣는 것이 좋은 일들이 있다.”라는 문장이 있다. 죽음을 눈앞에서 경험해야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정말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한 사고 현장이나 참혹한 범죄 소식을 신문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는 피범벅이 되고 골절된 뼈가 밖으로 드러난 현실을 마주한다. 생존자는 빠르게 구조하고, 사망자에 대해선 억울함이 없도록 조사해야 한다. 목을 맨지 몇 달 만에 발견되서 부패되고 새들과 구더기에 의해 파해쳐진 시신을 옮기고 부검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정신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지만 사회가 유지되려면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 임무다. 직업적으로 단련이 될 수는 있어도 결코 익숙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위급하거나 위험한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응급구조사, 소방관, 경찰, 응급실 의료진, 부검의 등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더욱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실질적인 보상도 뒤따라야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범죄소설에서 얻은 가정적인 교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