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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Sep 25. 2022

범죄소설에서 얻은 가정적인 교훈

넬레 노이하우스 '바람을 뿌리는 자'를 읽고.

노인은 혼자였다. 애틋했던 부인과는 오래전에 사별했고, 삼남매를 두었지만 서먹해진지 오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충직한 개 한 마리와 추억이 깃든 집과 땅이 전부였다. 조용하게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던 그에게 풍력발전 업체가 접근해 온다. 거액의 보상금을 제시하며 토지를 팔라고 한다. 연락이 뜸하던 아들딸도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노인은 이제 돈도 필요 없고, 자식들도 보고 싶지 않다고 거절한다. 얼마 후 그는 숲속에서 개와 함께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바람을 뿌리는 자’라는 소설을 읽었다. 땅을 지키고자 했던 노인의 살인사건을 큰 줄기로 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지를 뻗어나간다. 노인이 살던 숲을 보호하려는 환경단체와 에너지 기업 간의 갈등이 벌어진다. 범인을 잡기 위해 이번에도 호프하임 경찰서 강력반 보덴슈타인 반장과 피아 형사 콤비가 출동한다. 이와중에 노인은 토지를 자식들이 아니라 평생지기에게 물려주는데, 그 친구가 보덴슈타인 반장의 아버지라 사건이 더욱 복잡해진다.


 지구온난화, 친환경 에너지, 생태계 보호 등 2000년대 들어 가장 유행하는 사회적 이슈를 버무려서 멋진 배경을 만들었다. 그 속에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온갖 사연과 갈등을 지켜볼 수 있다. 예컨대, 환경단체는 자연보존이라는 같은 목적 아래 활동하지만, 회원들 개개인이 이곳에서 바라는 것은 모두 다르다. 초라한 자신의 이력을 꾸미기 위해 일하는 인물이 있고, 무심한 부모로부터의 일탈을 위해 참여하는 학생도 있다. 형사들의 일상에도 크고 작은 삶의 굴곡이 생긴다. 피아 형사의 남편은 아내가 위험한 현장에 뛰어드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보덴슈타인 반장은 외도를 한 부인으로부터 적반하장으로 이별을 통보받는다.


 소설의 주된 줄거리는 얼굴뼈가 짓이겨진 채 발견된 노인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나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수사 과정을 드라마 보듯이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인생사는 대부분 내 주위에도 있을 듯해서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점은 타우누스 시리즈 전체의 매력 포인트고, 내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열렬한 팬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말미쯤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보게 되었다. 노인은 개를 유일한 가족으로 여기며, 숲속에서 나무를 베는 녀석들에게 공포탄을 날리면서 하루를 보낸다. 얼굴도 보이지 않던 자식들은 아버지 땅이 금싸라기가 되자 나타난다. 그의 하루가 너무나 적막해 보였다. 반면에 노인의 오랜 친구였던 사람은 중년이 된 아들하고도 관계가 좋다. 등 뒤에 와인을 숨기고 아들한테로 가서 이혼을 위로해 주고, 자신의 고민거리도 털어놓는다. 그 장면을 읽을 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나도 모르게 밑줄을 긋고 있었다. 그래서 범죄소설을 읽었지만 너무나 가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멀리 살고 계신 아버지에게 더 자주 전화해야겠다고, 아들하고도 지금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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