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일상에서 길어올린 재미있는 이야기.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by 고블린 연구소

번식철은 점점 끝나가는데 씨암말이 또 임신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새벽부터 일어나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나절에는 극도로 허기진다. 스트레스와 떨어진 혈당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 사이엔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급하게 편의점 문을 들이밀고 있었다.


편의점은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오늘 하루 편의점에 갈 일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이번에 읽은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우리들이 거의 매일 들리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매대에 올려진 물건 바코드를 찍고 있는 알바생은 오늘 몇 시간이나 근무했는지, 편의점 앞 파라솔에 앉아서 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로 이뤄진 참참참 콤보를 먹고 있는 아저씨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 볼 수 있었다.


서울역 노숙자 독고가 편의점 사장 염여사의 지갑을 찾아주는 사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한 염여사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으면서 독고에게 편의점 야간 알바 자리를 제안한다. 오랜 노숙 생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독고가 편의점을 오가는 사람들과 정을 주고받으면서 사회성과 예전의 기억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내 주위에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생활밀착형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편의점 알바를 하는 공시생, 사업한다면서 집에 돈을 다 가져다 쓰기만 하는 남편 때문에 시급이라도 벌려는 아줌마가 편의점 스텝으로 일한다. 대작을 쓴다면서 맨날 구상만 하면서 번듯한 완성작 하나 없는 무명작가, 하는 일마다 사기를 당하고 결혼생활마저 파토나버린 사십 대 돌싱, 직장에서 치이고 집에서도 어깨를 펴지 못하는 쓸쓸한 가장 등이 오늘도 불 켜진 편의점을 찾는다.


초대박 베스트셀러여서 도대체 무슨 스토리인지 궁금해서 주문해 보았다. 막상 읽어보니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하루와 크고 작은 고민거리를 잘 버무려 놓은 내용이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지만 실로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하다.’고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이 소설도 하품만 나오는 일상 속에 잠겨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길어올린 듯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도 진짜 삶이 더 드라마틱 하다.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 주인공 독고씨가 편의점에서 행하는 기적?이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었다. 예컨대,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아들이 걱정이라는 어머니에게 ‘잔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먹으면서 하라고 삼각김밥을 들이밀어 보라’는 충고에 감동을 받는다거나, ‘소주는 줄이고 대신에 옥수수수염차를 마셔보라’는 말에 눈물을 흘리는 중년 아저씨의 모습은 쉽게 동감하기 어려웠다. 고대소설의 특징인 전능한 주인공을 떠올리게 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소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나의 인생만 지루하거나 고달픈 게 아니라는 위로를 다시금 받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행복이 비롯된다는 오래된 진실을 또 한 번 마주했다. 그나저나 시원하고 밝은 편의점에서 달콤한 매일유업 바리스타 모카와 두툼한 삼립 보름달 빵을 흡입했더니 다시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책 생각은 이 정도만 하고 다음 목장으로 악셀을 밟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식물의 생명력이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