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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Aug 01. 2022

아버지가 나를 귀찮게 했던 이유.

흥인지문을 구경하면서

 모처럼 서울로 휴가를 왔다. 일정과 가격, 카드 멤버십 할인 등을 고려하다 보니 동대문 앞에 있는 호텔에 묶게 되었다. 객실 창 밖으로는 흥인지문과 부속 성곽이 손을 으면 을 만한 거리에 보였다. 잠깐이라도 나가서 둘러보고 싶었지만, 창 밖으로는 비가 무섭게 내리고 있었다. 에어컨 바람아래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이들의 의향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녀석들을 채근해서 방을 나왔다. 호텔 컨시어지에서 우산을 빌려 팔 차선 대로 를 건너니 흥인지문을 코앞에 마주할 수 있었다. 네모나게 각을 맞추어 축성한 돌벽이 정직하고 견고해 보였다. 방어 거점 치고는 지대가 낮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대문 앞에 반원형으로 쌓은 옹성이 미적으로도 아름다웠다.


 태어나서 스무살이 되도록 서울시 '동대문'구 주민으로 살았다. 그래서인지 흥인지문이란 말이 아직도 입에 잘 붙지 않는다. 나와 우리 동네 친구들은 '동대문 운동장' 앞에 있는 스포츠사에서 아령을 사서 들었고, 배용준이 입고 나온 체크 남방을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입을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한양 사대문에 얽힌 의미를 축소하려고 방향만 담은 이름을 붙였고 그게 오래도록 통용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조선시대 때 건립했을 당시의 뜻을 되살려 '흥인지문'이라고 이름을 복원했다. 조금은 어색해도 자꾸 쓰려고 노력해야겠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나 어른들이 힘든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야 하는 오래된 사찰을 왜 가자고 하는지 귀찮았다. 무슨 이유로 뙤약볕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벽화나 유적지를 구경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때의 내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나의 아들 딸이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접하고 경험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오래도록 전해지는 건축물의 질감을 피부로 음미하고, 그 역사적 의미도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당연히 책이나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 하고는 다르다. 이렇게 해서 녀석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는 의도는 없다. 애국심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저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좀 더 알려고 하면, 삶이 그만큼 풍요로워진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다.


 장대비로 온 몸이 어가면서도 남매와 함께 흥인지문을 뺑둘러 구경하고, 길 너편 성곽까지 모두 올랐다. 물론 녀석들의 진짜 목표는 보상으로 주어지는 1시간의 스마트폰 자유시간이다. 하지만 걔네들도 엄마 아빠가 되면, 어린 시절에 아빠가 왜 태풍으로 비바람이 치던 아침에 호텔 앞 흥인지문과 성곽을 가까이서 보게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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