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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Aug 14. 2022

우리 주위의 '사악한 늑대'들

넬레 노이하우스 '사악한 늑대'를 읽고.

 소녀는 말을 좋아했다. 그녀에게 마구간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였다. 연습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집에 돌아갔지만 소녀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래? 선생님이 집에 데려다줄까? 벌써 어두워졌어. 부모님이 걱정하시겠다.”

 꼬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집에 갈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오금이 저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면 안 되는 비밀이다.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아빠에게 굳게 약속했다. 어젯밤에도 꿈에 늑대가 나와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소녀는 너무 무서워서 화장실에도 못 가고 이불에 오줌을 쌌다.

 “집에 가기 싫어요.”

 “왜 가기 싫은데?”

 “왜냐면... 왜냐면... 아빠가 맨날 아프게 해요.”

 이제 약속을 어겼으니 분명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니? 아빠가 어떻게 아프게 하는데?”

 “선생님 집에 가면 안 돼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 집에 놀러 간 적도 있다. 거기서 말 사진을 보고 코코아도 마셨다. 선생님은 어른이고 무서워하는 것도 없으니까 늑대가 와도 물리쳐 줄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선생님이 집에 데려다주고 너희 엄마랑 얘기해 볼게.”

 꼬마는 말에게 인사하고 마구간을 나왔다. 밖에 나오니 두려움이 마구 밀려왔다. 애써 참은 눈물 때문에 눈두덩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사악한 늑대’는 아동학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강가에서 가녀린 소녀의 시체가 떠오른다. 몸에는 오랜 기간 동안 받아온 학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소녀의 신원도 파악하지 못한 채 수사는 점점 수수께끼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중에 탐사보도로 이름을 날리던 방송인이 납치, 폭행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피아와 보덴 콤비는 두 사건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한다. 타우누스 시리즈 여섯 번째 이야기로 이번에도 호프하임 경찰서 강력반이 출동한다.      


 모든 범죄자들은 단죄되어야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놈들은 천벌을 받아야 한다.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은 대다수의 아동 대상 성폭력이나 학대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 의해서 자행된다는 점이다. 꼬마들이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평범한 얼굴로 마주하는 우리 이웃이나 친구 중에도 늑대의 얼굴을 숨긴 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우리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정면으로 깨뜨린다. 예컨대 이야기 속에서 명망 있는 직위의 사람들은 값비싼 슈트 속에 사악한 모습이 감추고 있었다. 반면에 온몸에 문신을 한 2미터 거구나, 집도 없이 캠핑카를 전전하는 떠돌이 등은 약자를 보호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겉모습이나 지위만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보여준다.     


 이번에도 넬레 노이하우스는 어두운 소재를 독자의 눈을 책장으로 빨아들이는 글솜씨로 풀어냈다. 600쪽 분량인데, 끝으로 치달을수록 남은 페이지 수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사악한 늑대’들을 깨끗하게 사냥하는 장면이 나와서 속이 다 후련했다. 끝까지 속도감을 잃지 않고, 더운 여름밤에 시원한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구급차의 문이 닫히고 경광등이 푸른빛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딸이 물었다.

 “엄마”

 “응? 왜?”

 “이제 나쁜 늑대가 죽은 거야? 다시는 나한테 아무 짓도 못하는 거야?”

 엄마는 울면서 아이를 꼭 안았다.

 “응, 이제 나쁜 늑대가 절대 아무 짓도 못 하게 할 거야. 엄마가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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