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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Aug 27. 2022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는 양들은?

소설 '양들의 침묵'을 읽고.

 범죄 스릴러 소설의 고전 ‘양들의 침묵’(토머스 해리스 저, 공보경 옮김)을 읽었다. 모두가 알 듯이 영화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특히 FBI 수사관 역 조디 포스터와 사이코패스 정신과 의사를 맡은 앤서니 홉킨스의 연기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계속 두 배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책을 읽어보니 영화가 원작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오리지널 스토리가 지닌 오락성과 무게감 모두 탁월했다. 가을 무렵 제주도 시골에 위치한 나의 사무실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지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책만 펴들면 곧바로 신경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춤을 추었고, 눈앞에는 냉장고 쨈 옆에 놓여져 있던 누군가의 머리통이 그려졌다.

     

 미국 여러 지역에서 젊은 여자들의 시신이 잇따라 발견된다. 범인은 피해자를 죽인 뒤 살가죽을 벗겨내고 강에다 유기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다. 살인이 계속되지만 수사당국은 어떠한 단서도 찾아내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FBI 국장 잭 크로포드는 수사관 훈련 중인 클라리스에게 강력범죄자 감옥에 가서 렉터 박사를 만나보라고 명한다. 그는 자신의 환자를 잡아먹었던 의사로 이 사건에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박사는 클라리스에게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으면 그녀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다. 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클라리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내면 속에 숨 쉬고 있던 공포의 정체를 밝혀낸다.     


 한편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상원의원의 딸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상원의원은 렉터에게 수사에 적극 협조하면 수감 환경이 나은 곳으로 옮겨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렉터 박사는 이에 동의하고 8년 만에 지하에서 벗어나 풍경이 보이는 곳으로 이감된다. 그는 약속대로 사건의 단서를 하나씩 제공하고, 클라리스는 박사의 충고를 바탕으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범인은 피해자 가죽으로 자신에게 맞는 옷을 만들려고 재봉틀을 돌린다. FBI는 전문가들 조언과 사체가 버려진 장소들을 바탕으로 수사 범위를 좁혀나간다.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은 다른 형사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이 범죄 스릴러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정신적 상처를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마을 보안관이었던 아버지의 피살과 홀어머니 밑에서 겪어야 했던 가난의 경험은 여전히 클라리스를 위축시킨다. 무엇보다 그녀가 어렸을 때, 죽음을 앞둔 양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누구나 성장하면서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게 된다. 그중에 어떤 트라우마는 두려움과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 커서 평생토록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작가 토마스 해리스가 이 작품을 쓴 것이 1988년이다. 벌써 30년을 훌쩍 넘은 작품이지만, 요즘 쓰여진 수사물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속도감을 자랑한다. 이야기의 이음새는 서로 의지해서 아치를 이루는 돌다리처럼 견고하다. 신출내기 여자 수사관이 좁은 공간에서 환자를 잡아먹었던 정신과 의사와 대화하는 장면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경찰 특공대 감시를 뚫고 렉터 박사가 탈출하는 장면은 책으로 읽어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는 양들은 무엇인지 읽는 내내 되물어 보게 된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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