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을 보았다. 아직도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아빠에게 6학년 딸이 추천한 작품이다. 넷플릭스에 있길래 큰 기대하지 않고 눌러보았는데 끝까지 보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시즈쿠는 소설가가 꿈이지만 자신이 과연 될 수 있을지 망설인다. 친구들은 진학시험 준비에 여념에 없지만 시즈쿠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도서카드를 통해 매번 자신보다 먼저 책을 빌리는 세이지라는 동급생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했지만 차츰 서로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세이지는 악기 만드는 장인이 되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결심한다. 시즈쿠도 세이지를 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첫 소설을 완성한다. 둘은 멋진 모습으로 미래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3차원 애니메이션만 접하다가 오랜만에 2D 느낌의 화면을 보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영화 감성이 떠올라 반가웠다. 독서 스탠드, 자전거, 육교, 초록색 칠판 등 학창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장면마다 잘 그려진 수채화를 보는 듯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손질한 지브리스튜디오의 장인 정신이 엿보였다.
요즘 영화나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가슴 졸이는 속도감이나 폭발적인 결말은 없었다. 그저 중학교 학생의 일상을 차분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가족과 둘러앉아 밥 먹고, 언니와 이층 침대에서 잠을 자고, 우산 쓰고 등교하고, 교실에서는 사랑의 작대기가 엇갈리기만 한다. 초반에는 너무나 잔잔한 진행에 나가기 버튼을 몇 번 누를 뻔도 했지만, 곧 소녀의 다음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서로를 좋아하지만 우선은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한 두 학생이 이뻐보였다.
영화의 메인 테마 음악으로는 존 덴버 Country Road를 일본어로 개사한 곡이 쓰인다. 극 중에서 글솜씨가 좋은 시즈쿠가 미래를 생각하면 지은 가사인데, 나도 몇 번이나 돌려서 들었다. 기교 부리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정직한 이야기는 항상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