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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Oct 12. 2022

'에버랜드 눈치게임' 성공하던 날.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입구에 걸려있는 예상 대기 시간은 20분이었다. 우리 앞에는 교복을 입은 젊은 커플이 서 있었다. 요즘 놀이동산 필수템이 고등학교 교복이라더니 한껏 기분을 낸 것 같았다. 둘의 대화가 들렸다.


 “야, 오늘 눈치게임 개성공한 것 같아. 사람 대박 없어!”


 언제나 사람으로 미어터진다는 에버랜드. 그중에서도 피크로 꼽히는 기간은 가을 할로윈 축제 때다. 주말에는 사람에 빠져 죽는다고 전해진다. 인기 어트랙션이나 동물원 탐험버스를 타려면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입구와 가까운 주차장은 새벽부터 가득 차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 ‘에버랜드 (가는 날) 눈치게임’이다. 나도 이번에 알았다.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 날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작전이다. 예를 들면 평일, 한여름, 엄동설한이거나 이번과 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쏟아지면 놀이기구 안하는게 많으므로 ‘적당한 양’의 비가 포인트다. 꿈과 환상의 나라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다가 돌아오는 것보다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간 한글날 연휴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렸다. 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우리 가족은 한 달 전부터 스케줄 조정하고 비행기 표, 숙박을 예매했기 때문에 날씨에 상관없이 가는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이 에버랜드를 찾았다는 것이다. 다들 다양한 색깔의 우비와 때이른 점퍼로 무장하고 용인 자연농원에 놀러 왔다. 그래도 평소에 비하면 입장객에 적었는지 모든 놀이기구를 짧은 줄서기로 즐길 수 있었다.


 스릴 넘치는 어트랙션을 타면서도, 틈틈이 에버랜드 주토피아 대표 인기 코스에 모두 들어갈 수 있었다. 초식동물 지역을 탐험하는 ‘로스트 밸리’, 호랑이와 사자, 곰 등을 알현하는 ‘사파리’, 그리고 중국에서 온 귀한 손님 ‘판다 월드’가 그것이다. 가끔씩 쏟아지는 소나기에 우산을 받쳐야 했지만 만족스럽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사자와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곰이 앞발을 들고 있는 숲속에 들어가니 그들의 일상에 내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로스트 밸리 초원에서는 코끼리, 코뿔소, 일런드(영양), 낙타, 알파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얼룩말은 여기서도 뒷발질을 하고 있었고, 기린은 우리 버스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상추를 우적 되고 있었다. 500킬로그램에 달하는 말을 매일 접하는 나에게도 가슴 뛰는 경험이었다. 도시에서 사는 어른들에게는 더욱 인상적인 추억이 되었을 것 같았다. 곰돌이 모자를 쓰고, 할로윈 호박 우비를 입은 어린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동물원에 대한 찬반이 의견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당연히 이런 식의 관람은 동물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나 역시 동물의 권리나 보존에 관심이 많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사람과의 접점을 늘리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전한 대자연 환경에서 동물을 보호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대중들에게 관심을 일깨우다 보면 보다 나은 공존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자, 호랑이, 기린, 얼룩말 등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의 차이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어느 누구보다 주토피아 사람들이 동물들의 복지와 행복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는 것 같았다. 일단 서식환경이 예전보다는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콘크리트 바닥과 쇠창살로 이뤄진 삭막한 풍경은 없었다. 바닥에는 흙과 풀이 밟히고 있었고, 주위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시내가 흘렀다. 그리고 먹이나 놀이를 통해서 동물들에게 최대한 자연상태와 유사한 행동을 유도하고 있었다. 이번에 구경한 에버랜드 동물들은 숲과 강에서 (물론 그들에게는 그 공간이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정도라도 동물을 보살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다. 사육사분들과 동물원 수의사 분들 수고를 엿볼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짧은 가을이 가기 전에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 오랜만에 롤러코스터 급강하하면서 소리도 질러보고, 온몸이 다 젖는다는 아마존 익스프레스 탐험도 했다. 직업적으로 동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놀이공원 배경음악을 들으며 에버랜드 곳곳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녔다. 하루 종일 입은 웃고 있었고, 눈은 바쁘게 다음 탈거리를 검색하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설탕 듬뿍 뿌려진 추러스로 군것질하고, 점심시간에는 추억의 돈가스도 꿀맛이었다. 아들이나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신나는 하루였다. 해가 저물 무렵 출구 앞쪽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얼룩말 굿즈를 집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오늘 눈치게임 대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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