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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린 연구소 Jan 03. 2023

'마음이 걸리는 감기' 이야기

일본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를 보고.

 길거리를 걷다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자주 마주친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는 반복해서 ‘정신과 진료받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알려준다. 우울증은 ‘마음이 걸리는 감기’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다.


 일본 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는 제목에 줄거리가 모두 드러난다. 남자는 매일 숨쉬기도 어려운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회사에서는 갑질을 하는 고객의 전화를 받고 진땀을 흘린다. 일상의 스트레스가 반복해서 쌓이던 그는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외출을 할 수도 없고, 전화를 받을 수도 없다. 병원을 찾은 남자에게 내려진 진단명은 ‘우울증’. 회사를 그만둔 남자는 며칠씩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또 한동안은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서 울곤 한다.


 우울증은 암이나 유전적 난치병이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필사적인 대응을 하고 있었다. 환자는 뜻하는 데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 마음 때문에 지쳐간다. 정신질환이 왜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지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환자가 가장일 경우에는 가족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더욱 늘어난다.


 극 중에서 남편의 직업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 직원이고, 부인은 유명하지 않은 만화가다.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 여자는 만화잡지사에 찾아간다. 연재 계획서가 거절당하자 여자는 독자엽서를 소개하는 지면 일러스트라도 맡겨달라고 사정한다.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으니 도와달라고 한다. 난 이 장면이 가장 좋았다. 우울증이라는 병을 숨기지 않고 밝힌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작은 일, 사소한 업무는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주목받지 못하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제 몫을 해내는 이들을 보면 존경심이 생긴다.


 아내와 가족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남편은 점점 호전된다. 차츰 기력을 회복한 남자는 동네 놀이터까지 걸어가서 장모님께 도와줘서 고맙다고 전화를 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장면을 자꾸 돌려보게 되었다. 이 부부와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힘겨운 시간들을 거쳐왔는지 내내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정신의학과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숨기거나 할 일이 아니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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