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는데 옆 차선의 차가 신호도 없이 갑자기 끼어든다. 경적을 울리며 온갖 욕을 한다.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들으며 나 자신도 놀란다. 차에 누군가와 함께 타고 있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말들이다. 이 이야기를 평소에 존경하던 은사님께 들려드린 적이 있다. 그렇게 나쁜 말을 늘어놓고는 후회한다고. 그랬더니 은사님께서 대답하셨다. “난 후회도 하지 않는데.” 나보다 조금 더 솔직하셨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그 사람의 본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
운전을 하다가 신호 앞에서 멈추어 섰던 한 남자의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다. 눈앞이 하얗게만 보인다. 지나가던 사람이 눈먼 운전자를 도와서 대신 운전해 집에 데려다준다. 눈먼 남자를 집에 들여보낸 뒤 그를 도왔던 남자는 차를 가지고 달아나버린다. 집에 도착한 남자는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안과를 찾지만 그를 진찰한 안과 의사는 별다른 이상 소견을 찾지 못한다. 다만, 눈먼 남자를 도와서 안과에 함께 온 그의 아내도, 그의 차를 훔친 도둑도, 그를 진찰한 안과 의사도, 병원 대기실에서 잠시 같이 있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눈이 멀고 만다.
이 병에 걸리면 눈앞이 하얗게 보인다고 해서 ‘백색증’이라고 이름 붙여진다. 이 전염병은 삽시간에 온 도시로 퍼져 나간다. 도시는 혼란에 빠지고 행정기관에서는 눈이 먼 사람들을 정신병원으로 쓰던 건물에 격리시킨다. 그렇지만 병의 확산은 막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시력을 잃어가지만 단 한 사람만은 계속 앞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은 안과의사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눈이 멀어버린 남편을 혼자 수용시설에 보낼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도 눈이 멀었다고 말하고는 같이 격리시설로 이송되는 차에 오른다.
정부가 마련한 시설에 갇히게 된 눈먼 사람들은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이내 생존을 위해 행동한다. 모두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상황이므로 사람들은 그야말로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한다. 남의 음식을 훔치거나 하는 행동은 기본이고, 먹고 난 후 찾아오는 배설욕구도 아무 곳에서나 해결한다. 영양부족과 더러운 환경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속출하지만 이를 처리해 줄 사람이 없으므로 시체는 그냥 아무렇게나 방치된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사람의 기본적인 예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이타심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눈먼 사람들 사이에서도 총과 주먹을 지닌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들은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굴복시킨다. 그들 역시 갑자기 눈이 멀었지만 그런 불행이 그들을 더욱 공격적이고 흉포하게 만든다. 이들은 수용시설에 공급되는 배급 물품을 독점하면서 자신들에게 금품을 바친 사람들에게만 먹을 것을 조금씩 내어준다. 자신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자를 보내지 않으면 음식을 주지 않겠다는 협박도 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들의 부당한 요구에 거부감을 표시하지만, 점점 주려오는 배고픔에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게 된다.
이 소설이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묘사하는데 그쳤다면 지금과 같이 높게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가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런 본성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해준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안과의사 부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봐야만 하는 비참한 현실 때문에 힘들어한다. 차라리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눈이 멀어버렸으면 하고 기도한다. 하지만 그녀는 더러운 현실에 안주하거나 굴복하기보다는 볼 수 있다는 능력을 다른 눈먼 사람을 돕는데 기꺼이 사용한다. 약한 사람의 먹을 것을 챙겨주고, 다친 사람의 상처를 돌보고, 처참하게 죽은 눈먼 사람의 시체를 닦아준다. 그녀의 희생덕분에 그녀와 함께 했던 일행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잃지 않고 삶을 연장해 간다.
안과의사 부인은 힘으로 부당하게 다른 사람을 탄압하는 일당들을 처단하는데 앞장선다. 그녀의 움직임에 그동안 폭력에 무릎 꿇었었던 다른 눈먼 사람들도 막대기를 들고 함께 일어선다. 당장은 자신의 배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동료의 빵을 훔친 사람들이었지만,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존재 앞에서는 목숨을 걸고 함께 인간애를 발휘한다. 왜 안과의사 부인만은 끝까지 시력을 잃지 않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작가의 설명을 기다렸다. 주제 사라마구는 그에 대해서 끝까지 대답해 주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의 절대량이 늘어나는 요즘은 되도록 가볍고 재미있는 내용의 책을 읽으려고 한다. 지나치게 잔혹한 내용을 읽다 보면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역겨운 장면 묘사에 몇 번이나 책을 덮으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지쳐하면서도 이상하게 끝까지 읽게 되었다. 잔인하고 냉정하지만 그것이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좀 더 품위 있고 이타심 있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나역시 다른 사람이 나를 볼 수 없는 차 안에서는 타인을 향해서 저주의 말을 내뱉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에 폭력과 이기심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의 마음도 공존함을 제시한다. 두 얼굴을 가진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현명하게 다루어 나갈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모두가 눈이 멀어가고 있는 시대에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시선 한 번이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온기있게 할 것이다. 안과의사 부인이 끝까지 시력을 잃지 않는 이유는 독자 스스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