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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기 May 12. 2020

'군산 경마장' 을 아시나요

경마장 가는 길은 왜 그렇게 멀던지

대학교 때 경마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진짜 말 경주가 벌어지는 과천 경마장이 아니라 영상을 보며 경마 경기에 베팅을 하는 곳이었다. 장소는 용산 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시급은 꽤 괜찮았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정도 되었을 것이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 후배들과 괴천 경마장에 놀러갈 일이 있었다. 첫 경마장 나들이라 설렜는데 아쉽게도 나는 다른 급한 일이 생겨 가지 못했다. 20대 시절 경마장은 다소 멀게 느껴졌다. 이후로도 경마장을 간 적은 없지만. 그때와 같은 벽이 느껴지진 않는다. 아무튼, 그 시절 경마장은 쉽게 가기 힘든 그런 장소로 여겨졌다. 경마장도 시마다 하나씩 있는 그런 흔한 시설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더 특별한 장소로 여겨졌다. 과거 성수동 서울숲 자리에 경마장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호기심이 일었다.


성수동에 위치한 가판대에 경마 관련 잡지들이 비치되어 있다. 


그런데 군산에서 경마장 얘기를 들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한국 최초의 경마장이라니. 처음에 김중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장님으로부터 경마장 얘기를 들었을 때는 잘못들은줄 알았다. 기록을 찾아보니 군산에 경마장이 들어선 건 일제시대인 1927년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90여년 전의 일이다. 당시 일본인들이 현재 팔마광장 인근인 미와사키 농지 2만 1,000평에 경마장을 조성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안타까운 사고 때문이다. 해방 후 군산 경마장은 미군이 접수했는데 당시 미 헌병들이 모닥발을 피우다 폭탁인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포발로 경마장은 폐허가 됐고, 현재는 '경마교'만 남아 그 당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경마장이 있었다는 것은 그 당시 군산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번성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당시 군산의 경제적 번성은 일제의 수탈과 무관하지 않다. 경마장도 마찬가지다. 실제 경마장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지만 일제 시대 수탈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군산 개정면 발산초등학교 내에 있는 옛 일본인 농장 창고. 일제 시대 군산 지역의 일본인 댖주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은 것이다. 입구에는 미국에서 들여온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에는 이중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 일본인 대지주가 불법 수집한 수많은 한국의 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을 보관하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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