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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기 Mar 04. 2021

증권사 실물투자팀의 과제


최근 몇 년 사이 대체투자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증권사들의 관련 조직도 커졌다. 어제 만난 한 증권사 실물투자팀도 30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지난 몇 년 간 증권사 실물투자팀은 해외 부동산 투자 시 총액인수 후 셀다운 하는 형태로 큰 역할을 해왔다. 그간 국내에서 블라인드 펀드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국내 운용사들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할 때 건 별로 투자자들을 모집했는데 이런 방식은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총액인수를 하면서 일종의 블라인드 펀드 역할을 한 것이다.


국내 증권사와 해외 대체자산 투자 구조/자료=금융감독원


사실 해외에는 이런 형태가 거의 없다. 국내 업계에서만 있는 독특한 거래 방식 중에 하나다. 몇 년 전에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대체투자전문지 PERE와 대체투자 포럼을 같이 연 바 있다. 2016년 11월에 1회 행사가 열렸는데 당시 행사는 LP들은 참가비가 없었다. 당시 나는 행사 흥행을 위해 첫 해는 증권사들을 LP로 분류하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PERE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첫 해는 증권사들을 LP로 초대했다. 다만 두번째 행사에서는 내가 먼저 증권사들을 LP에서 제외하자고 의견을 냈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증권사들이 블라인드 펀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한국 부동산금융 업계가 결국 가야할 길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에 열린 PERE 행사. 한 세션을 진행하면서 KIC 이승걸 당시 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KIC 부동산투자실장님이 되셨다고


증권사들이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몇 년 간 해외 부동산 시장에서 한국 투자자들의 영향력은 상당히 커졌다. FT나 WSJ에도 수 차례 한국 투자자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증권사들도 큰 역할을 했다. 나중에는 증권사들이 딜을 따고 운용사를 들러리로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그 정도로 증권사들의 영향력이 강했다.

증권사의 연도별 해외 대체투자 규모/자료=금융감독원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프랑스 파리의 오피스 매물이 나왔는데 입찰 시기가 추석 즈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매도자가 애초 입찰 일정을 바꿔 추석 이후로 연기했다고 한다. 한국 투자자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국내외에서는 한국 기관들이 호구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들렸다. 아울러 증권사들이 실적을 위해 무리하게 해외 부동산을 총액인수 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증권사들은 총액인수 후 재매각까지 6개월 이내에 끝내려고 한다. 그 기간을 넘기면 골칫덩이가 된다. 그런데 증권사들이 무리하게 해외 부동산을 인수하면서 인수 후 6개월이 지나도록 미매각 되는 물량이 크게 증가했다. 증권사들이 투자자도 모집하지 않은 채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설 정도로 과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매각 물량을 공모 리츠로 개인투자자들에게 떠넘긴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때문에 아예 증권사와는 총액인수 형태로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운용사도 있었다.


지금까지 이야기가 몇 년 전부터 작년까지 대략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조금씩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증권사 실물투자팀 스스로 총액인수 후 셀다운 하는 모델의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만난 모 증권사 실물투자팀 담당자는 “언젠가는 블라인드 펀드가 활성화 될 것으로 봤지만 코로나19로 인해 3~5년은 흐름이 빨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렇다. 몇 년 전부터 블라인드 펀드가 하나둘씩 조성되기 시작했지만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블라인드 펀드를 안 만드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블라인드 펀드가 일반화되고 있다. 부동산 투자 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앞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 빨라지고 확산될 것이다. 결국 증권사 입장에서는 그간 자신들의 주요한 수익 기반 중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증권사에는 올해가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다. 딜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이날 개별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이렇다.


"올해는 앞으로 어떤 상품을 만들고 어떻게 지속적인 비지니스를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지금 당장 일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후배들의 앞날을 위해서다. 증권사가 가진 강점이 분명히 있다. 이를 잘 활용해 좋은 상품을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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