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요?"
"여기에 그 잡지가 여기에 있는 건 맞지만, 보여줄 수는 없데요."
"왜 보여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게요. 그건 물어봐도 답하지도 않고, 안 된다고만 하네요."
나는 중국 국가 도서관에서 통역 역할을 맡은 중국인 대학원생에게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자료실을 나오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해 여름, 혼자서 중국 베이징에 갔었다. 내가 쓰고 있는 논문 주제는 '1950년대 북한 미술의 소련 미술과의 상관관계'인데, 정작 북한 자료도 소련 자료도 원본을 직접 보기가 쉽지 않다. 결국 당시 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교류했던 중국에 가서 자료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자료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료를 찾으러 다른 나라 도서관에 가는 일이 앞으로 내 인생에 또 있을까 싶기도 해서, 그 이유만으로도 살짝 설렜다.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한 것이 아는 중국어 선생님을 통해 한국어를 전공한 중국인 대학원생 메이를 섭외한 것이었다. 메이에게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들을 알려주었고, 중국 국가도서관에 그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는 답신을 받은 후, 비행기 표를 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막상 우리 둘이 기관을 방문하여 자료 신청을 했을 때, 도서관 직원은 내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려주었다. 다급한 마음에 메이에게 통역을 통해, 내가 이 자료를 보기 위해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했다. 직원의 답변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단호하고 고압적인 태도에서 더 이상 자료 요청을 해 봐야 소용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찾고 있는 자료가 여기에 없다고 하면 포기라도 할 텐데, 있는데 보여줄 수 없다고 하니,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맥이 딱 풀려버렸다. 통역을 맡은 메이 역시 당황했고, 인근의 베이징대학과 중앙민족대학에 전화를 돌려 자료를 볼 수 있는지를 물었다. 두 기관 역시, 소장은 하고 있으나 열람을 불가능하다고 했다. 통역 알바로 일정 비용을 받기로 했던 메이는 이 상황에 미안해했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야 하는 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둘 다 울어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녀를 돌려보내고, 자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중국 국가도서관의 다른 열람실에 앉아 있다가 엎드려 낮잠을 잤다. 울다 잠들어서 기운이 빠져버린 탓인지, 푹 자고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창밖으로 들리는 까마귀 소리가 꿈결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