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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Jan 27. 2024

'정소공주가 짧게 산 덕분에'라고 말하지 않는 태도

 세상에 이렇게 연꽃 모양이 많을 일인가. 도자사 수업 시간에 청자 그릇에 새겨진 연꽃들을 봤다. 내 눈에는 그저 푸른색 도자기와 그 안에 새겨진 문양일뿐인데 이것이 다 똑같은 연꽃이 아니라고 했다. 한 겹으로 된 연꽃, 중첩되어 표현된 연꽃, 끝이 뾰족한 연꽃, 끝이 둥글게 U자 모양으로 추상화된 연꽃. 다 모양이 다른 것이라 했다. 미술사는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세계라는 생각을 했다.     



 연꽃의 다양한 문양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은 해당 청자가 어느 시점에 제작된 것인지를 유추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릇이라는 것도 유행을 타서 일정 시기 동안 한 겹으로 된 연꽃 문양이 대량 제작되다가 중첩된 도톰한 연꽃 문양으로 옮겨간다. 그 시기들을 분절해서 통계를 내면 해당 무늬의 도자기들은 몇 세기 전반 또는 후반에 만들어졌는지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도자사 연구의 중요한 축은 어떤 문양과 양식이 어느 시점에 등장하는가를 밝히는 일인 듯했다. 유물에 연대를 부여하는 것을 '편년'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을 경우, '상한선'과 '하한선'을 부여해서 정의 내린다. 가령 A 문양의 유물이 여러 개 존재하는데, 그중 980년과 1020년에 각각 제작된 유물이 있다고 하면, A 문양의 경우 제작된 시기의 상한선은 980년, 하한선은 1020년이 된다. 그래서 만약 A-1이라는 유물이 새롭게 발견되었을 경우 그 유물은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라고 결론짓게 된다.


편년의 상한선과 하한선 사이는 그 간격이 넓은 것보다는 좁은 것이 좋다. 이 유물은 "10세기~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보다는 "10세기 후반~11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이 훨씬 구체적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편년의 간격을 좁혀서 제공하는 기준점이 되는 유물 중 하나가 조선시대 정소공주 태항아리이다. 세종의 딸인 정소공주는 12세 어린 나이에 사망한다. 일반적으로 탯줄을 담은 항아리는 별도로 매장을 하는데 워낙 이른 나이에 죽은 탓인지 관과 태항아리가 함께 묻힌 채로 발견되었다. 


정소공주의 탄생과 사망 시점은 <조선왕조실록>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태항아리의 제작 시점은 그녀가 태어난 1412년부터 사망한 1424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에 항아리 제작 기법으로 사용된 인화 기법 등이 함께 공존하는 시기가 '15세기 초반'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상한선과 하한선이 상당히 가깝기 때문이다. 정소공주, 그녀가 짧게 살았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정소공주가 짧게 살았기 때문에'라는 말 뒤에, 그녀의 아버지인 세종이 남긴 글을 덧붙였다. "부녀의 정은 언제나 변할 리가 없는 것이다. 대개 사랑하고 귀여워하는 마음은 천성에서 나오는데 어찌 존망을 가지고서 다름이 있다 하겠는가. 아아, 네가 죽은 것이 갑진년이었는데 세월이 여러 번 바뀌매 느끼어 생각함이 더욱 더하도다.". 짧은 생을 살고 유명을 달리한 첫째 딸을 그리워하는 세종의 마음이 절절하게 실록에 남아 있었다.     


 교수님은 인화 기법 제작 시기를 짐작하게 해주는 유물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부녀지간의 정을 덧붙여 설명했다. 학문을 공부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정소공주가 짧게 산 덕분에'라고 말하지 않는 태도 또한 중요할 것이다. A 교수님의 수업에는 그것을 살피는 마음이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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