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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Jan 27. 2024

한국도자사 수업을 듣다가 우리 집 부엌을 떠올렸다

<한국도자사> 수업 첫날, 한 학기 동안 고려청자를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될 거라 했다. 교수님의 매끈한 설명은 그대로 타이핑을 쳐서 원고로 만들어도 될 정도였다. 강의는 도자기 자체의 외형적 특징 설명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해당 유물이 등장하게 된 시대 상황이나 당대인들의 인식 구조에 대해 통찰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박물관 유리 속에 얌전하게 박제되어 있는 도자기들이 누군가의 주방에, 누군가의 밥상에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강의 내용 또한 좋았다.


도자기들은 애초에 '문화재'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음식이나 술을 담기 위해 사용했던 '주방용품'이기도 했다. 교수님은 도자기를 생산자인 사기장의 입장에서 머물지 말고, 수요자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도자기는 소비자의 요구가 반영되어 변해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집 그릇들이 떠올랐다.


우리 집 그릇은 중구난방이다. 취향으로 유형화하기에는 너무 유사성이 없다. 부엌 천장에는 행남자기 세트, 하얀 바탕의 코렐, 꽃 그림이 둘러진 포트메리온 접시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과거 도자기의 형태가 조금씩 변화했던 양상을 소비자의 요구와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계열성 없는 우리 집 그릇들에 역사성과 맥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남자기 세트는 내가 최초로 장만한 그릇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며 백화점에서 40만 원을 주고 들여왔다. 2000년대만 해도 '행남자기'나 '한국자기' 등은 이불 세트, 한복 세트 등과 함께 혼수 필수품 목록 중 하나였다.

하지만 행남자기가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코렐 제품류의 그릇을 새로 들였다. 아이가 혹여 그릇을 떨어트려도 깨지지 않아야 했다. 오로지 단단함이 그릇 선택의 기준이었던 시절이었다. 브랜드의 광고 문구 또한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었으니, 아이 키우는 이들에게 이만큼 매력적인 카피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한편, 밥 먹는 일보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아버린 꼬마를 식탁 앞에 앉히기 위해서는 장비들이 필요했다. 뽀로로가 그려진 플라스틱 식판은 에디슨 젓가락과 함께 육아 필수장비 중 하나였다. 각종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그릇들이 개수대에 상시 놓여 있었다.


그다음으로 포트메리온 접시를 사들였다. 당시 나는 리움미술관에서 우연히 '근심을 잊어버리게 하는 받침'이라는 낭만적 문구가 새겨져 있는 '백자청화 망우대 초충문 접시'를 봤었다. 테두리를 균일하지 않은 점을 눌러 찍어 두르고 그 안에 소담한 들국화와 벌을 함께 그려 넣은 접시의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이 접시와 비슷한 디자인 구성을 가진 포트메리온 접시를 사들였다.

그러다가 3칸으로 구획된 반찬 접시를 집에 들였다. 아이가 자라서 반찬의 간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무렵, 퇴근길에 반찬 가게에서 3개에 만원에 묶어서 파는 패키지를 샀다. 반찬을 세 식구가 먹을 수 있게 삼등분해서 3칸 반찬 접시에 나눠놓곤 했다. 이도 저도 귀찮아질 무렵 밀키트를 배송으로 받아 들게 될 무렵에는 넓은 쟁반을 주로 사용했다.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볶음밥, 카레 등을 단품으로 만들어서 한 끼를 접시 하나에 담아냈다.


부엌 천장 안에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릇에는 자녀의 탄생과 성장에 따른 식사 준비의 변화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또한 밀키트 시장의 확대로 인한 음식 장만 양상의 변화상도 그릇의 형태로 반영되어 있었다. 도자사 수업을 들으면서 '가족과 사회의 변화상에 따른 가정 내 그릇 형태의 변화상 고찰'이라는 생활사 조사를 해 봐도 재미있겠다는 잡생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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