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ti Jan 27. 2024

이름 앞에 붙게 된 수식어, '석사 1학기생'

 3월 첫 주, 대학원 수업이 시작됐다. <한국 근현대 회화사> 시간에 A 교수님은 한 명 한 명 자기소개를 하게 했다. 교실 안에 있던 십여 명은 자신의 이름 앞에 '석사 3학기', '박사 2학기'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이야기했다. 나도 눈치껏 '석사 1학기 OOO입니다'라고 무사히 첫 문장을 뗐다.


 자기소개 풍경을 보면서, 그제야 대학원 수업은 석사생과 박사생의 구분 없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을 이해했다. '석사 1학기생'과 '박사 6학기생'이 같은 커리큘럼을 배운다는 이야기인데, 이제 갓 입학한 쪽이 가랑이 찢어지게 달려가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터였다. 학부 수업은 모두가 해당 학기 수업에 지식이 전무하다는 전제하에 A부터 Z까지 '가르쳐' 주는 형태라면, 대학원 수업은 Z까지의 과정을 마쳤다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하는 수업이었다.

 

 <한국 근현대 회화사> 수업은 절반은 강의 형태로, 절반은 각자 주제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교수님은 학생 각자에게 계획하고 있는 논문 주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논문 주제를 이번 학기 수업 주제와 얽어서 제시해 주셨다. 가령 중국 근현대 회화 관련 논문을 쓸 예정이라고 이야기한 석사 수료생에게는 '한·중·일 모던 걸의 시각화 양상 비교'라는 주제를, 조선시대 백자로 논문을 쓸 예정이라는 석사생에게는 '조선왕실 도자 속 회화 변천'이라는 주제를 써 보라고 제안하셨다. 학생 각자의 관심사를 본 학기 수업 주제와 접점을 찾고 확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러면서도 내 순서가 돌아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지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서울 골목 유적 관련한 책을 썼던 적이 있는 터라, 서울의 풍경을 어떻게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렸는지를 조사해 보고 싶다고 했다. 교수님은 '일제강점기 회화의 경성 이미지화 양상'이라는 제목을 잡아보라고 하셨다. 발표 주제가 정해지고 나자, 미션 수행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한편, 오늘 수업에는 자신을 청강생이라 소개한 분이 계셨다. 나보다 나이는 열 살 정도 더 많이 보이는 중년 여성분이었다. 저녁에 개설되는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번 학기에는 A 교수님의 수업만 들으러 대구에서 월요일 아침마다 오실 거라고 하셨다. 아침 10시에 시작되는 서울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7시 시간대의 열차를 타야 했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이분께 매번 이렇게 KTX를 타고 다니셨던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거라도 해야, 살 것 같아서"라고 답하셨다. 아, 알죠, 저도 너무 잘 알죠. '이거라도 해야, 살 것 같아서' 말이죠. 

이전 05화 교강사 주차신청서 말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